시골신부로 가을공소에 갈려고 미사짐을 꾸려가지고 막 나서는데『신부님 종부났습니다』하는 교우가 나타났다. 난처한 일이다. 차 시간은 불과 15분밖에 안 남았는데! 그러나 어찌하랴! 다시 미사짐을 뒤져 종부가방을 꺼냈다. 복사와 교우를 앞세우고 그 집으로 달렸다. 마치 집이 시내라 걱정은 적었다. 가면서 들은 이야기로 그분은 어느 공소 회장이었는데 사업에 실패하고 7~8년 냉담했다고 한다. 회장 때는 상당히 열심한 편이었다고도 한다. 그 집에 당도하니 그 부인은 문만 열어주고 어디로 사라져버린다. 들어가보니 아랫목에 누워있는 환자는 입을 벌리고 얼굴은 새캄해져 가지고 큰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있다. 방에서는 몹시도 냄새가 풍겨 숨쉬기가 곤란할 정도다. 물론 의식은 전혀없다. 내 마음은 한없이 설래인다. 용기를 내어 차근차근 병자의 성사를 시작한다. 그 환자가 지르는 소리는 끝이지를 않는다. 순서대로 성유를 발라가는데 환자가 지르는 소리가 점점 약하여지고 마지막 전대사 강복을 줄 적에는 완전히 그쳤다.
또한 험상궂던 얼굴도 평온을 되찾은듯 깨끗하여졌다. 나는 무릎을 꿇고 한참 들여다보며 감사의 정을 금치 못하였다. 얼마나 괴로왔으면 그와 같은 상태이었겠느냐! 그런 환자에게 나같은 못난 사람의 손으로, 평화를 주시고 영생을 주시고 하느님께 얼마나 열심한 기도가 나왔는지 모른다.
이제 새로운 기분으로 정거장에 달려갔다. 마침 시골가는 버스라 시간을 제대로 못지켜 차까지 무사히 타게되었다. 흔들리는 차에 기대앉아 무한히 감사하며 그때처럼 신부된 보람과 만족을 느낀바가 없는듯 하다.
며칠 후 그 환자는 선종하고 장을 치렀다는 소식을 듣고 미사때 기억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