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이 두껍게 덮여 금방에라도 폭우가 쏟아질 것 같은 어느 여름, 장마철이었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성당 뜰을 산책하고 있는데 한 청년이 달려오더니 종부가 났단다. 환자가 어떤 상태냐고 물었더니 이미 죽었을런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급히 성체를 모시고 청년을 따나 나섰다. 전기불도 없는 벽촌 본당이니 택시가 있을 리 없다. 삼십 리 길을 걸어가는 것은 문제가 없었으나 장마 때인지라 흙탕물이 허리까지 차오르는 개울을 두 번이나 건너는 데는 아주 혼이 났다. 밤 11시께 환자 집에 도착했더니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불을 끄고 모두가 깊이 잠들어 있었다.
집안 식구들을 깨워 놓고 보니 환자는 술에 취해 정신이 없다. 사연을 물었더니 실로 어처구니 없는 대답이다. 동네 초상이 났는데 그날이 장사날이었다. 산에서 소주 몇 사발을 냉수 마시듯 마시고 속이 풀리지 않아 숨이 막힐 듯이 날뛰기 때문에 종부를 청했는데 지금은 속이 풀려서 잠이 들었다는 것이다. 화가 치밀었다. 쏟아지는 폭우 속에 풀숲을 헤치며 비탈길을 걸어 되올아오면서 먼 옛날 어린 시절을 생각했다.『너 정말 신학교에 갈래? 』등잔불 옆에서 바느질을 하시던 어머니의 물으심이었다. 나는 말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긴 한숨을 내쉬신다. 온갖 생각이 오가는 격동의 침묵이다.
어머니는 20여세에 결혼하여 첫 아들을 낳으셨다. 애기 첫돌이 지나고 한 달 만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애기 엄마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어린 몸이기에 앞이 캄캄하다. 그러나 아들 하나에 온갖 희망과 기대를 걸고 실로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과 고통과 수모를 참고 견디면서 살아왔는데 이제 그 아들이 신학교에 간단다.
한때는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돕겠다고 국민학교마저 중퇴할 결심으로 겨울방학 동안 모진 바람을 안고 눈 속을 헤치며 땔나무를 해 오던 그 아들이 어머니를 버리겠다(?)니 웬 말인가? 희망은 사라지고 기대는 무너지고 가슴이 찢긴다.『이왕에 가려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성공해야 한다』 드디어 승락을 하신다.
소신학교를 마치고 해방을 맞았다. 그러나 기쁨보다는 슬픔이 희망보다는 절망이 컸다. 왜? 고향이 이북이기에 어머니와 아들은 끝없는 이별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6ㆍ25의 참상이 벌어지고 1ㆍ4 후퇴로 북한 동포들이 대거 월남했지만 어머니는 소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