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의 대학 진학을 앞두고 미사를 청한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다. 막상 대학 예비고사를 치루어야 할 날이 다가오자 혹시 시험에라도 낙방하지 않을까 몹시 걱정스러워졌다. 그래서 예비고사를 치르는 손자를 위해 미사 한 대를 본당 신부님께 부탁드리며 예물 봉투를 건네주었다. 그 신부님도 할머니도 열심히 미사를 바치고 기도를 드렸지만 결과는 낙방이라는 쓴 잔만이 주어졌을 뿐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 하루는 그 할머니께서 신부를 찾아왔다. 몹시 흥분된 얼굴로 『미사를 드려도 효과가 없는 걸 보니 공염불을 하신 모양인데 그 미사 예물을 도로 돌려 달라』고 하더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사람을 웃기기 위한 과장된 풍자이겠지만 이것을 웃음으로만 넘길 수 없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우리 주위에는 미사 지향에 대한 미신적 사고방식이 은연중에 물들어 있는 신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럴 때마다 미사 청을 받는 신부로서의 입장이 난처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는 미사 중의 기도를 식당에서 음식을 청한 후 즉시즉시 배달되는 주문서로 착각해서는 안 되겠다. 또 기도는 바라는 것을 저절로 이루어지게 하는 마술도 아니다. 기도는 위급한 때를 만났을 때 그 순간을 면하기 위해 잠깐잠깐 사용하는 비상 수단은 더욱 아니다.
만일 이처럼 기도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면 이는 기도에 대한 오해요 남용이다. 이 같은 오해와 남용은 바로 눈 앞의 이익과 당장의 효과만을 생각하는 우리의 욕심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기도는 하느님을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대로 움직이게 하려는 강요가 아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사귐을 통하여 하느님 자신이 원하시는 바를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이를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는 노력이다.
우리의 기도가 당장 이루어지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언제나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원대한 섭리요 배려임을 깊이 깨닫고 희망을 잃지 말아야겠다. 미사 지향과 기도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할머니와 같은 촌극이 다시 일어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