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의 일이다. 나의 부모님은 8남매 중의 맏이인 나는 제쳐두고 둘째를 소신학교에 보내기로 하셨던 것이다. 부모님은 나를 노년에 대비(?)하여 남겨 두시려는 뜻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부모님의 뜻이 변하셨다. 기왕에 천주님께 바치려면 맏이를 바쳐야 된다며 나의 뜻을 물어오셨다. 처음에 나는 맏이니까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며 어린 맘에도 어른스런 생각을 했다. 그러기에 신학교는 생각지도 않고 지방 중학교에 입학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부모님께서 내게 신학교에 갈 의사가 없느냐고 물어오시니 나는 좀 의아했다. 그러나 슬그머니 나의 숨은 욕심이 발동했다.
『내가 신학교엘 간다. 그러면 보고 싶은 서울의 친척도 볼 것이고 또 서울 구경도 할 것이 아니냐. 신학교에 간다고 할까』하고 망설이다 드디어 나는 결정했다.
신부가 되기 위해서보다 신학교는 서울에 있으니까 서울 구경 하기 위해서는 신학교에 가는 수밖에 없다는 시골 어린이의 소박한, 그러면서도 욕심스러운 태도였던 것이다.
1956년 4월 초 나는 드디어 생전 처음 서울 구경을 하게 되었다. 입학 시험에 합격되고 입학을 기다리는 얼마동안 나는 겁도 없이 집을 나섰다. 골목골목을 누비며 서울 구경이 시작된 것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되돌아 나오기도 수십 차례였다. 당시는 서울 시내 어디서나 명동성당은 보이니까 길을 잃은 듯하면 좀 높은 곳으로 올라가 명동성당을 기점으로 여기저기 이것저것 구경을 했다. 이렇게 구경하다 보니 나는 어느새 신부가 됐다. 52명이 아니 정확히 말해서 서울 구경하기 위해 신학교에 입학한 나와 신부 되겠다고 소신학교에 입학한 51명을 포함해 52명 중 7명이 신부가 됐다.
나는 아직도 서울 구경을 하고 있지만 이제 서울 구경은 시시해서(?) 싫다. 그러기에 나는 이제「영원한 서울」을 구경하기 위해 지금도 무엇인가를 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