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던 신부가 되고서 1년여의 보좌 생활을 마친 후 내 나름대로의 포부를 펼 수 있는 첫 임지는 울릉도 천부동본당이었다.
조그만 어촌본당으로 5백여 세대의 면 소재지에 위치한 경치가 절경으로 신자 수 3백여 명에 1년 수입이 30만 원 정도였다. 첫 본당이었기에 새 사제로서 신자들의 올바른 신앙 자세의 계몽과 사목에 열중하였다. 한 번은 찾아온 신자에게 커피 대접을 했더니 이것도 대접이냐는 표정이었다.
술을 내야만 하는데 그걸 몰랐던 것이다. 이번에 온 신부는 신자와 잘 맞지 않는다는 소문이었다.
그 뒤로 막걸리를 대접했더니 대화가 되기 시작했다. 그 지방 풍속에 적응하는 것이 한 나라 안이면서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4년여의 본당 생활은 신자에게나 나 자신에게나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본당 신부가 없는 본당 아닌 사실상의 공소가 돼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후임 신부가 오지 않는다는 소식에 열심한 신자 할머니들은 눈시울을 적셨다. 이유야 어떠하든 첫 본당에서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으니 내 마음인들 편할 수 있을까?
신부가 없게 된 데에는 본당 신부인 나 자신의 탓도 있었지만 젊은 신부가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기에는 너무나 본당 사정이 어렵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자신을「첫 본당을 팔아 먹은 신부」라고 불렀다.
얼마 전 주교님께서 방문하셔서 성당 축성식도 하시고 견진성사도 주셨다고 한다. 신자들은 신부 보내주기를 간청하였다고 한다.
천부동본당이 하루 빨리 번성하여 명실상부한 본당 구실을 하여 본당을 팔아 먹은 신부라는 오명을 하루 빨리 벗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