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학교에 부임하면서 나는 공교롭게도 옛 나의 담임 신부님 방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처음 며칠간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15년 만에 들어와보는 감회도 컸지만 방 안 가득히 옛 스승 신부님의 얼이 그대로 남아있는 듯싶고 따라서 나의 소신학교 시절에서 있었던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때문이다.
내일의 사제를 양성하는 이 신학교(작은 못자리)에서 과연 내가 옛 스승 신부님들처럼 신학생들에게 올바른 지도와 교육을 담당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하면서도 내 나름대로 더 좋은 지도신부가 되어야겠다고 욕심을 가졌었다.
그러나 신학교에 온 지 1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나는 다시 그때 마음을 점검해 본다. 신학생들을 위해서 나는 얼마만큼 정성과 힘을 기울이고 있는지?…웬지 찬사보다는 교회의 원성과 주님의 책망을 들을 것만 같다. 특히 어떤 학생들의 경우 성소를 버리고 학교를 떠날 때마다 더욱 그런 느낌이다. 이 작은 못자리에 내가 물(?)을 잘못 주어서는 아닐까? 비료(?)를 잘못 쓴 게 아닐까?…못자리를 지켜보며 한 해의 수확을 계산해 보는 초조한 농부의 심정과도 같아진다.
어느날 수업시간에서 있었던 일이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학생들에게 나는 이런 말을 했다.『여러분은 앞으로 우리 한국 교회를 짊어지고 나아갈 사제들이 되겠고 또 우리 가운데 어떤 학생은 장래 주교님까지 될 사람도 있을 텐데…』하고 말하자 한 학생이 이렇게 대답했다.
『신부님! 주교님이 되면 그땐 신부님은 특별히 잘 봐 드릴께요』모두들 이 말에 까르르 웃는다.
글쎄, 그때 가서 나를 특별히 잘 보아주지 않아도 좋으니 훗날 부디 좋은 사제 좋은 주교님까지 되어준다면...더 이상 나로선 바랄 게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