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을 지도하며 지내온 지 몇 년, 발꼬린내가 코를 진동하는 속에서도 진지하게 토론하는 모습들-.
갓 고등학교로 진학한 학생들이 여린 손을 들고 그리스도를 증거하겠다고 선서하는 모습들-.
일주일 동안의 희생을 초롱초롱하게 보고하는 영혼들-.
이들은 다이아반지를 엿가락과 바꿔 먹는 자기중심적 어린 세계에서 벗어나 협동이 무엇인지 타인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세계로 넘어온 것이다.
그들의 마음 속에 하느님이 어떻게 채색돼 가는지 그들의 신앙이 무엇으로 구축되는지 그들의 맑은 미소 속에 십자가의 고통이 어떤 의미를 주는지 알 길 없이 오직 하느님의 손길만이 이 신비한 생명들을 당신의 길로 이끄시도록 바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렇게도 밝고 명랑했던 K대학생으로부터 온 편지.
『어느듯 잎새 떨어진 초라한 나무, 인생이 무엇인지 무조건의 죽음과 신앙 사이를 방황합니다.
부정하고 싶으면서 부정할 수 없는 죽음을 두려워해야 하는지 찬양해야 하는지 삶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한 세계에서 또 한 세계로 넘어가야 하는 번민과 아픔, 그러면서도 어린 애같이 돼야 한다는 성서의 말씀이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할지.
창조주로부터 받은 신비한 생명이며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의 유산인 너희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청산의 소명과 연결된 지상의 생활이라는 것을책임 있게 알려 줘야 할 텐데 우리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밀려오는 어려움이다.
청소년들의 문제가 복잡해 갈수록 그들을 위한 지도와 연구가 시급해진다.
내년은 세계적으로「청소년의 해」이다. 주교님들의 사목 교서가 나오고 사목 지침이 발표되었지만 모두 다의 공동 관심 속에서만이 젊은 역군들이 주님을 찬미하며 하느님 나라 확장의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