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힘을 주시는 분을 통해서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히브리 4ㆍ13). 이 말씀은 나에게 신념과 용기와 열성을 북돋아 주는 말씀이 되었고 사제생활을 하는 데 지침이며 성소의 길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해 준 말씀이다.
부제품을 앞두고 갈등과 번민으로 괴로워 했다. 내가 일생 동안 독신자로서 생활해야 한다는 어려움보다는 현세대가 기대하고 요구하는 착한 목자의 구실을 잘 할 수 있느냐 하는 점에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대인들은 자기 자신은 생활에 성실하지 않으면서도 사제만은 성인 사제가 되어 주기를 기대하고, 모든 교우들과 같이 호흡해 주기를 원한다. 그런데 부족한 내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되어 모든 교우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을까?
또한 교우들의 기대를 묵살하고 실망시켜 주는 목자가 될 바에야 차라리 나 자신을 위해서나 교회를 위해서도 길을 바꾸는 것이 현명한 생각이아닐까?
이러한 생각으로 번민하고 있을 때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신념과 용기를 갖고 주님 제단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각오로 사제가 되었지만 양의 무리 속에 들어가자마자 새로운 걱정이 생겼다. 그것은 세상이 살기 싫어서 죽고 싶다고 하는 사람, 신은 왜 불공평하고 무능하냐고 원망하면서 고통 중에 사는 사람, 하느님만을 섬기겠다고 약속하고 무당이나 점 치는 사람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주님의 품으로 인도할 것인가?
또한 주위에는 양을 노리는 야수들이 너무도 많으며 양들도 야수의 꼬임에 현혹되어 목자를 잘 따르지 않는다. 더욱이 야수들은 양보다 목자를더 노리고 유혹하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나 자신을 유지하며 양의 무리를 지키고 보호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이렇게 자위한다. 하느님의 구원사업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내게 힘을 주시는 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나는 주님의 뜻을 따라 도구적 역할을 잘 하면 된다. 신념과 용기와 열성을 가지고 최선을 다할 때 나에게 맡겨진 양떼를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