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부산에서 서울행 열차에 오른 신부에게 어느 부인이 『신부님, 어디 가십니까』『네, 서울에 피정하러 갑니다』『신부님은 하느님 계시다고 생각하심니까?』초면에 퍽 당돌한 질문이다.『부인께선 진정한 행복을 찾고 계신 것 같군요!』『세상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네, 하느님을 믿는 마음에 있습니다.』『그럼 종교 서적을 읽어야 할까요?』『네 그렇습니다』조랑말로 여행을 하던 옛날 사람들은 초면에는 통성명으로 예의를 먼저 갖추었는데 스피드 시대인 오늘날의 사람들은 복잡한 예의 절차는 생략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초면인데 행선지를 묻고 또 신부란 일생을 하느님께 바친 신분임을 알 텐데 하느님이 계시냐고 따질 수 있으니 말이다.
이 부인의 가정은 대대로 내려오는 천주교 집안이었고 남편은 사업을 핑계로 교회를 등진 지 5년이 넘었으며 그런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도 2년간 냄담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자기는 하느님의 품에서 느낄 수 있었던 마음의 평화를 2년간 하루도 생각 안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부인께선 남편의 영생에 대해서 생각해 보셨습니까?』『그럼은요. 내 몸 같이 사랑해야 될 이웃 중에 남편은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 생각하니까요』『나는 좋은 선물을 부인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부터 하느님께는 남편을 위한 간절한 기도를 남편에게는 하느님의 사랑을 닮은 조건 없는사랑을 꾸준히 바치시라는 부탁입니다. 그리고 적당한 시기에 남편의 손을 꼭 잡고 깊은 신뢰를 표시하십시오. 하느님 앞에서 맺은 사랑의 부부인 것을 확인시키십이오』부인의 눈에 이슬이 맺혔고『네』하는 목소리는 떨고 있었다.
착한 목자로 클로즈ㆍ업 될 때가 있는「로-만ㆍ칼라」의 사제복에 새삼 보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