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인의 지도자 층에 속하는 바리시아파 사람인 닌코데모가 하루는 사회의 이목을 피하여 어두운 밤에 예수님을 방문하고 새로운 교리에 관하여 알고자 하고 있을 때 예님께서는『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이 말씀은 성사와 관련하여 하신 말씀이지만 이 말씀을 우리는 또한 일상 신앙생활의 규범으로도 삼을 수 있겠다.
우리는 흔히 신자가 되고, 혹은 수도자나 성직자가 되면 그것으로 안심하여 생활하려는 경향에 빠지기 쉬운 것 같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이러한 평범하고 안일한 생활 속에서는 별 의미도 보람도 찾지 못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만일 우리가 교회에 몸을 담는 것으로 혹은 성소에 응하는 것만으로 신앙생활은 다 된 것이라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매일 요구하시지는 않으셨을 것 같다.
반 세기도 넘는 전의 일이지만 나는 신부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신학교에 들어갔다. 당시의 신학교 규칙은 엄격하고 세밀하며 빈 틈이 없었다. 그러나 서울 장안에서만 자란 나의 생활 태도는 선생 신부님들의 눈에 즐겁게 보여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둘째 학기가 성소를 좌우하는 몸이 되고 말았다. 이런 줄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나는 집에서 첫 여름 방학을 끝내고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신학교에 돌아가면서 생활 태도를 새롭게 바꾸었다.
신부가 된 후 15년 동안 주로 지금은 애석하게도 가 볼 수 없는 땅이 되어 버렸지만 이북에 있는 몇몇 본당을 거치면서 사목생활을 하였다.
사목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생각한 것은 자아를 완성하는 문제였다. 어떻게 하면 거듭거듭 나는 생활이 될까 하는….
빈 손으로 다만 주님께 의탁하고 시작했던 수도회 회원들을 데리고 6ㆍ26라는 온 국민의 불행을 겪었으면서도 오늘까지 팔십을 바라보며 수도원에서 회원들과 더불어 보람 있는 생활을 나날이 보냄은 온전히 주님의 은총이리라. 주님의 말씀을 따라 과거적인 자신을 완전히 비워 버리고 바라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한 번만 거듭 나는 것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 팔십을 얼마 앞두고서도 거듭 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