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 전의 이야기라서 자세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런 대로 흥미 있었던 이야기가 하나 있다. 한 임금이 있었다. 권력의 정상에 앉아서 온갖 호사스러운 생활을 다 하던 그였지만 늘상 그를 괴롭혀오는 번민이 하나 있었다.『도대체 인생이란 무엇일까? 』
하루는 박학하기로 이름 난 신하를 불러서 인생에 관한 해답을 물었다.
신하는 창고에 가득히 쌓을 만한 분량의 책을 가져왔다. 임금은 열심히 그 책들을 읽었지만 도저히 다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신하를 다시 불러서 그 책을 반으로 줄여 오도록 하였다.
이렇게 해서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그 책들은 몇 권으로 압축되었고 임금은 어느덧 기력이 쇠진한 노인이 되었다. 그래서 신하는 다시 책을 한 권으로 줄여 가져갔지만 병상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던 임금은 그것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때에 신하는 임금의 귀에 대고 나즈막이 말하였다.『인생이란 태어나서 고생하고 죽는 것입니다』죽어가던 임금은 탄식이라도 하듯이 깊은 숨을 몰아쉬고 죽었다는 내용의 줄거리이다. 숱한 사람들이 제 나름대로의 인생론을 펴왔다.
이쯤에 이르고 보면 눈치 빠른 혹자는『인생 경험도 부족한 주제에 무슨 인생론인가? 』하겠지만 아무도 인생을 제대로 논하지 못할 바에야 사제 초년생이라고 해서 듣고 배운 인생 경험담 하나쯤 말 못할 이유라도 있겠는가?
랏씽어 신부가 말하였던가?『우리는 너무도 쉽게 지난 날들을 믿음이 수월했던 시대라고 부러운 듯 이야기한다』결국 신앙이란「어제나 오늘이나 삶을 꿰뚫어보려는 부단한 노력」으로써 서술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도 눈에 선한 과거지사가 하나 있다. 매주 방문하여 대화를 나누던 환자 한 분이 나에게 늘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신부님,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왜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지요』그분은 중풍으로 7년째 시달리던 분이었다.
임금의 귀에 속삭이던 그 신하의 못다한 해답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인생에 대한 가장 절실한 물음과 해답, 그것은 생의 각고 어린 결실-신앙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