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볕이 살며시 창문을 열고 미소를 띄운다. 마당에 잘 다듬어진 나무들은 생수를 빨아들이기에 여념이 없고 푸른 가지를 보란 듯이 봄을 만끽하는 것 같다.
서품 된 지 몇 년 되지도 않으면서 교리를 가르쳐왔다. 처음에는 신학교에서 배운 것을 겁없이 자신있게 했었는데 해가 거듭될수록 점점 어려워져 이제는 두려움마저 든다.
유아세례를 받은 후 신앙에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고 믿어왔는데 막상 내가 예비신자들을 가르치면서 그들의 질문을 받을 때마다 궁지에 몰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올해도 예외없이 정성스럽게 십자가를 긋고 교리를 시작하는 내 마음 한 구석에 한 가닥 불안의 흑점이 도사리게 된다. 틀림없이 이번 예비자들 중에서도 하느님을 보게 해 달라고 생고집을 부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어떻게 답변을 해야만 잘 알아들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언제부터인지 현대인들 중에서는 증명을 요구하고 오관으로 감지할 수 있는 것만을 수긍하고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생각이 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의 문을 닫아 걸고 배타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분명한 사실인데도 아집 속에 파묻혀 자나온 생활권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석연찮은 얼굴을 할 때 더 나아가서는 억지이론을 전개하면서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을 볼 때『주님 어떻게 설명해야 되겠습니까?』하고 속으로 뇌까려본다. 신앙의 특별한 은총이란 우리로 하여금 우리보다 위대한 분에게 우리 자신을 온전히 바치고 그분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지 이론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더더욱 어려움을 느끼나 보다.
예비자 교리가 끝난 후 조용한 시간에 십자가 아래 꿇어앉아 기도드려 본다.『예수님! 어떻게 해야만 당신을 더 잘 알릴 수 있겠습니까? 언제까지 당신을 찾아야 하고 두드려야 하겠습니까. 주여! 나에게 당신을 더 잘 알 수 있게 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