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에의 길을 닦기 시작한 지 29년-. 공산당의 탄압으로 재학 중이던 덕원신학교가 폐교되어 본의 아니게 퇴교의 쓴 맛을 보고 1ㆍ4 후퇴 피난민의 대열에 끼어 남하하여 피난 수도 부산에서 뼈를 깎는 듯한 고생 속에서도 초지를 굽히지 않고 다시 가톨릭대학에 편입, 멀리「로마」에서 신품을 받은 박정일 주교. 남다른 우여곡절 끝에 사제에의 길에 올랐고 마침내 주교좌에 오른 박 주교이기에 그가 오늘 주교로서의 첫발을 딛는 느낌과 포부 그리고 그에게 거는 주위의 기대는 남다른 것 같다. 5월 31일 제주교구 초대 교구장에 착좌한 박정일 주교를 찾아 앞으로의 사목 구상을 알아보기로 한다.
-제주교구 초대 교구장으로 착좌하신 소감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자격 없는 사람이 중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런지 크게 걱정됩니다』겸손된 표현으로 서두를 끄집어낸 박 주교이지만 그의 한마디 한마디 말 속에는 굳은 결의가 담겨져 있다.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능력 있는 사람만을 당신의 도구로 쓰시지 않으시고 비록 무능하더라도 당신의 은총으로 하느님의 손 안의 도구가 돌 수 있으리란 믿음에만 의지하며 성심껏 일해볼 각오입니다. 교구 신자들의 협조를 바랄 뿐입니다.』
-과거에 제주와 어떤 인연 같은 것은 없었습니까?
박 주교의 답변은 의의로 흥미 있는 내용이었다. 6ㆍ25 당시 서울의 대신학교는 서귀포 서홍리 공소 (현재 복자수도원) 에 피난 와 있었고 신학생이었던 박 주교도 거기에서 다른 30명의 동료 신학생들과 함께 4개월간 체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당신만 해도 한라산 공비들이 마을 곳곳을 습격하여 인명을 해치고 약탈 방화를 일삼았었지요. 부락 청년들과 함께 보초를 서고는 했는데 어느날 내가 지키고 있던 북문으로 공비들이 기습해 들어왔어요.』
구사일생의 이야기를 웃으면서 말한다. 그 후 두 차례 다녀갔고
『평소 내려와 살고 싶었던 고장인데 소망대로 여기에서 살다 묻히게 될 것 같다』고도 한다.
-앞으로의 사목 방향을 구상해 보셨습니까?
교구장에 임명된 지 불과 한 달이 조금 지났는데도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 상당히 깊이 연구한 듯 서슴없이 대답한다.
『먼저 우리 신자들이 하느님께 대한 두터운 믿음과 충성이 있어야겠습니다. 신앙인은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하느님을 믿고 주 안에 일치할 수 있도록 신자 교육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또 우리 교회가 사회 안에 현존하는 교회가 되도록 노력할 작정입니다. 소금이 음식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소금의 구실을 할 수 없듯이 교회도 사회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교회로서의 참 구실을 할 수가 없다고 봅니다.』
이렇게 말한 박 주교는 예수께서도 이 사회를 구속하시기 위해 사회 속에 들어오셨고 우리와 함께 살으심으로써 교회는 사회 속에 현존해야 함을 직접 가르쳐주시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교회가 사회 속에 현존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하여튼 어떠한 방법으로든 현존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제주교구의 특수한 여건들이 있을 텐데 그동안에 무엇을 좀 파악하셨습니까?
박 주교는 서슴치 않고「사제 부족」을 꼽았었다. 한국인 사제가 8명에 불과한데다 그나마 현재 교구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제는 5명뿐이어서 적극적인 신자 지도와 전교사업을 펴는 데 애로가 크겠다고 걱정한다. 그러나 그것에 못지않게 당면하게 될 난관은 재정문제일 듯. 도내에서 자치 운영이 가능한 본당은 제주시의 중앙본당 정도이다.
그러나 박 주교는『경제적으로 우리 제주가 어려운 것만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우리의 본질적인 어려움은 아니다』고 단정한다. 가난한 교회가 더 활기 있게 뻗어나간 사례를 많이 볼 수 있었고 또 제주 사람들은 독립심이 강하고 굳은 자립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교육 여하에 따라서는『예상보다 빨리 자립 교구로 성장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재정문제 못지 않게 박 주교가 부심하고 있는 것은 앞으로 제주에 밀어닥칠지도 모를 사회적 혼란인 것 같다.
『급격한 사회 변천이 있는 곳에는 항상 사회적ㆍ윤리적 혼란이 야기되기 마련입니다. 관광지로 각광을 받아 최근 급격한 성장을 보이고 있는 제주에서는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사회학도답게 사회 변천에 부응하는 사목 대책 수립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끝으로 박 주교는 故 현하롤드 대주교가 표방했던「전도의 그리스도화」를 상기시키면서 교회가 도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인식을 주민들에게 심어 나가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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