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람들은 자기네 나라에 예수 그리스도 교회를 전하고 견고케 한 보나파시오 성인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영국의 어느 베네딕또회 수도자였던 그는 윈프리드라고 불리웠다. 그는 수많은 아일랜드와 영국의 선교사들의 뒤를 이어「프리이스란트」란 곳에로 왔다. 그는 즉시 그곳 사람들에게 예수에 관한 기쁜 소식을 전파키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굳게 닫혀 있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그는 수도원으로 되돌아갔다. 수도원에서 그는 곧 아빠스로 선출되었다. 얼마 후 그는 교황에게서부터 독일로 선교사 파견을 받기 위해 로마로 떠났다. 교황은 윈프리드 아빠스에게 보니파시오라는 새 이름을 주었다.
보니파시오는「프리이스란트」로 향해 두 번째 여행길을 떠났다. 이번에도 성공치 못한 성인은 계속하여 독일로 들어갔다.「헤센」지방에서 머물며 그는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으나 그 지방 사람들 역시 아직도 해 달 바람 번개 등 게르만족의 신들을 믿고 있었으므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대단히 힘들었다.
어느 날 보니파시오는 그 지방 사람들을 모두 불러모아 놓고서 오오크를 가리키며『내가 이 나무를 찍어 쓰러뜨리겠습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믿는 오오크신이 있다면 나를 벌할 것이고 없다면 아무 일도 없을 것입니다』하고 말했다. 성인은 힘센 팔을 들어 도끼로 나무를 찍어 땅에 쓰러뜨렸다. 사람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서 있었지만 끝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놀라 성인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성인의 하느님은 미신이 아니라 유일한 신분임을 그들은 믿게 되었고 곧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 보니파시오는 도끼로 찍은 그 나무로 작은 성당을 지었다.
성인은 계속 쉬지 않고 독일에 하느님 나라 전파를 위해 일하였다. 곳곳에 교구와 수도원들을 세우고 사제들을 축성하여 교회를 날로 성장케 힘썼다.
성인이 73세가 되었을 때 다시 한 번「프리이스란트」로 친구들과 함께 갔다. 가던 도중 그들은 밤이 되어 천막을 치고 머물려고 했다. 그때 느닷없이 프리이스란트 사람들이 몰려와 성인과 25명의 친구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독일의 사도로 불려지고 있는 성인의 축일은 6월 5일이며 독일 주교들은 보니파시오 성인의 무덤에 모여 주교총회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