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향년 83세로 타계한 연극인 변기종 (마르꼬) 씨의 생애는 한마디도 연극을 사랑하며 연극과 함께 산 참다운 예술인의 생애였다. 뿐만 아니라 임종 전날까지 고통스런 아픔 속에서도 두세 시간씩 꿇어앉아 기도 바치기를 잊지 않았던 진실한 신앙인의 생애이기도 했다.
평소에 그를 존경하고 아끼던 지기 및 친지들은 그를 가리켜「법 없어도 살 사람」이었다고 서슴없이 입을 모을 정도로 그는 소박하고 청빈한 삶을 살다 간 성실한 생활인이었다.
1912년 부모의 격렬한 반대 속에 끝내는 결별을 감수하면서 18세란 젊은 나이로 연극계에 투신한 그는 35년 동양극장이 생겨 정착할 때까지 유랑극단을 따라 배고픔과 박대를 참아가며 20년 동안 산하를 방랑했다.
1926년부터 맡은 그는 독립운동의 하나로 연극활동을 시작, 나라를 빼앗긴 울분을 무대에서 터뜨리기도 했다. 그로부터 60여년의 연극 생활을 통해 그는 자유극장 (46년) 상록회 (51년) 극협 (52년) 자유극회 (53년) 민극 (55년) 등의 창립회원으로 활동했으며 예술원 회원 국립극단 초대 단장 및 서울시 문화회원 한국 연극협회 고문 국립극단 명예 단장직을 역임했다. 명배우도 화려한 스타도 아닌 그가 가난과 천대 속에서도 끝내 연극을 버리지 않고 오로지 외길 무대 배우의 길을 걸어온 것은 신앙을 바탕으로 한 확고한 삶의 태도 때문이었다. 12살 때 명동성당 복사로시작한 그의 신앙 생활은 연극과 더불어 성장 60여년의 연극 생활을 지켜준 굳센 보루였다.
노기남 대주교는 지난 2월 병환 중인 그에게 보낸 친필 편지 속에서 그를 가리켜『직접 간접으로 가톨릭 교회를 사회 속에 심어온 그대는 바로 교회의 산 역사』라고 강조했다.
그는 연극 사상 최장 기간인 62년간 연기 생활을 했고 20여개 극단에 가입했으며 6백여 편의 작품에 출연한 기록을 가진 원로배우였다. 그러면서도 단 몇 개의「상」으로도 만족한 겸손한 배우였다.
이처럼 화려한 갈채 각광은 못 받았지만 개화기로부터 30년대까지 신극사의 맥을 이어오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한 산 증인으로서 그의 생애는 값지고 풍요로운 것이었다.
이제 그는 갔지만 그의 청빈하고 소탈한 성품ㆍ모범적인 생활 태도는 그와 같은 길을 걷는 후배 연극인들이 아낌없이 물려받아야 할 귀한 보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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