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모본당에서 보좌로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아직 사목이 무엇인지조차 잘 모르는 풋내기였고 그 생활에 익숙치 못했던 때이다. 그래서인지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 같아서 쉬지 않고 동분서주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늘 바빴다.
어느날 본당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시내 변두리에서 사람이 급히 달려왔다. 급한 환자가 생겼다는 것이다. 병자의 성사를 달라는 것이다.
귀찮은 생각이 들었지만 일손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하필이면 이렇게 바쁠 때 급한 환자가 생기다니」하고 속으로는 짜증까지 났다. 급히 택시를 타고 그리로 달려갔다.
삼십대의 젊은 환자 하나가 어두컴컴한 방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그 방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계속 각혈을 하고 있는 젊은 환자 앞에서 나는 아찔했다. 정신이 없었다. 가족들 역시 어쩔 줄을 모르고 엉거주춤 서 있을 뿐이었다. 얼떨결에 나는『환자를 위해서 기도하자』고 했다. 그제서야 가족들은 무릎을 끓었다. 그리고 합장했다.
나 역시 그들을 따라했다. 가족들은 정말 절실히 그리고 진지하게 기도했다. 나는 그 속에서 기도하는 참된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정신을 가다듬고 마음을 여는 … 」나는 마음 한 구석에 일종의 부끄러운 감마저 느꼈다.
그 가족들은 믿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누워 있는 환자 외에는 아무도 신자가 아니었다. 죽어가는 환자가 원을 해서 신부를 청했던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진정으로 기도했고 기도하는 참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인간이란 결국「기도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느꼈다. 일정한 종교를 신봉하고 있는 종교인이거나 그렇지 않은 소위 비종교인이거나를 불문하고 마음 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결심했다. 다시는 급한 환자를 귀찮게 여기거나 짜증을 내지 않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