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종신부로 있다가 본당 신부가 됐다. 출퇴근이 있는 곳에서 없는 곳으로 목사가 있는 곳에서 없는 곳으로 사목의 자리를 옮겼다.
두드러진 변화 가운데 하나는 교적부의 위치다. 군사목에서의 교적부는 일반적으로 군종신부들의 머리 속에 있고 본당 사목에서의 교적부는 사무실 책장 속에 있다. 각지에서 모인 수천 명의 병사를 바라볼 땐 신자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책장을 열어 두툼한 교적부를 보니 신자가 빽빽히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교적이 있으니 신자가 있다는 지극히 논리적인 결론을 얻은 셈이다. 그래서 교적부는 내가 본당 신부라는 사실을 교구청의 임명 서한보다도 더욱 진하게 가르쳐 준다. 몇 년 동안 군대라는 특수 사목지에서 신자를 찾아 헤메었던 그 습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두 달이 지났다. 신자가 있다는 기쁨을 알려 준 그 교적부가 이제는 나에게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지워 준다. 본당 신부라는 것을 더욱 절감해 보란 양 교적부에는 세례 받은 하느님의 자녀들만 기록된 책이어야 되는데 점쟁이도 적혀 있고 배교자도 적혀 있고 돈의 자녀들도 쾌락의 자녀들도 적혀 있으며 나아가 성사를 받을 수 없는 자들도 또렷하게 적혀 있다. 출석부, 출근부, 병력 연명부, 범죄 인명부, 호적부 등에는 해당되는 사람들만 정확히 기록되어 있는데 …
이러고 보면 군대 사목시 머리 속으로 인계 받은 그 교적부가 서류상으로 인계되는 두툼한 본당 교적부보다 더 교적다운 교적부가 아닐까!
판공성사 때만 펼쳐보는 소위 그 교적부는 외국말과 한국말 이름이 적힌 의미 없는 연명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목자는 자기 양을 알아야 한다고 하셨는데 책장 속에 있는 교적부는 요즘 목자는 자기 양뿐만 아니라 양과 비슷한 양, 이리와 비슷한 이리까지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머리 속에 있는 나의 교적을 어느날 나의 후임 신부에게 인계해 줄 것을 결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