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장 서정길 대주교가 7월 5일로 교구장직을 은퇴한다. 이로써 서대주교는 제 7대 대구대교구장으로서 교구역사의 절반에 가까운 30년 10개월간의 재임동안 교구의 기반을 확고히 다지며 오늘날의 성장된 교구를 이룩하고 명예로운 교구장 은퇴를 맞게 됐다. <관계 기사 7면>
서대주교의 교구장직 은퇴는 새 교회법이 교구장주교의 은퇴연령을 만 75세로 권고하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한국천주교회에서는 교구장 정년제가 처음으로 적용되는 경우이다.
7월 5일 서대주교의 교구장직 은퇴와 동시에 이문희대주교가 그 뒤를 이어 제 8대 대구대교구장으로 착좌함으로써 대구대교구의 7ㆍ8대 교구장 교체는 종전까지 교구장의 사망이나 공석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교구장 재임중 이임과 승계가 이뤄지는 첫 번째 경우이기도 하다.
서정길 대주교의 교구장 은퇴와 이문희대주교의 교구장착좌는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금년 2월 24일자로 교황청 인류복음화성(省)장관톰코 추기경을 통해 보낸 공한에서 새 교회법 제401조에 의거, 서대주교의 교구장 사의를 수락하고 이 대주교의 교구장 승계발령을 인준한데 따라 이뤄지는 것이며 이ㆍ취임일도 7월 5일로 인준한바 있다.
대구교구가 설정되던 해인 1911년 5월 1일 경남 운산군(현 울주군) 두서면 미호리에서 출생한 서대주교는 1938년 6월 11일 대구 성유스띠노신학교 졸업과 동시 사제로 서품됐다. 사제로서 16년여 동안 화원, 부산 영도, 동래, 대구 교구경리, 계산동주임으로 봉직한 서대주교는 1954년 7월 6일 경남감목대리로 임명됐으며 1년 후인 1955년 7월 13일 대구교구장 겸 주교임명을 받고 2개월 후인 9월 15일 주교 품을 받았다.
당시는 한국교회의 교계가 정식으로 설정되지 않아 아프리카 「초마띠따누스」의 명의(名義)주교로 서품된 서대주교는 1962년 3월 25일자로 한국천주교회의 교계가 설정되고 대구교구가 대교구로 승격됨에 따라 대주교로 승격됐다.
6ㆍ25동란 후 혼란과 무질서의 와중에서 제7대대구교구장으로 취임한 서대주교는 재임기간동안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 등 교회의 쇄신과 역사적인 사건을 맞고 치루면서 오로지 대구교구의 발전과 한국교회성장을 위해 목자로서의 한평생을 송두리째 바쳤다.
금년으로 교구설정 75주년을 맞은 대구대교구는 서대주교가 교구장으로 취임한 1955년도와 비교해 볼 때 교세 면에서 두드러진 발전상을 보이고 있다.
55년 5월 말 당시 대구교구가 관할한 경상남북도의 신자수가 6만 2천 4백 명인데 비해 부산ㆍ마산 안동교구를 제외한 현재의 대구대교구 신자는 20만평을 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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