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골본당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의 일이다.
급한 노크 소리에 놀라 문을 열었더니 어떤 할머니가 문 앞에 털썩 주저앉으신다. 『웬 일입니까?』『신부님 종부 주십시요』엊그저께 뵌 분이라 별 생각없이『급합니까?』고 물었다. 『급하지요. 안 급한데 왔겠습니까』『영성체할 수 있습니까?』『예 하지요』급히 옷을 갈아입고 종부 가방을 들고 나섰더니『아이고 신부님 어디 갑니까?』하신다.『할머니 누가 위급하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급하기는 누가 급해요. 내가 종부 받으려 합니다』하신다.
기가 차서 말도 하기 싫었다. 그때서야 그 할머니를 자세히 보니 병색이 짙고 배를 움켜 잡았음을 보았다. 성체를 다시 감실에 모시고 치솟는 화를 초인적 노력으로 눌렀다.
사연인즉 맹장염에 걸렸는데 아들 부부는 강원도로 행상을 나가고 어린 손자들을 거두며 집을 지키고 있던 중 이런 몹쓸 병에 걸렸으나 수술비 십만 원은 커녕 단돈 이천 원밖에 없어 죽기를 기다리다가 종부나 받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찾아왔다는 것이다.
종부라는 말에 허둥대는 나 자신에 부아가 났는지『맹장이 터지거든 연락하십시요. 즉시 뛰어가서 종부 드리지요』하는 말이 목구멍에서 들랑날랑 했지만 가라앉히는 약이 있을 테니 써 보라 하여 돌려보내고서 다시 생각하니 심사가 대단히 편찮았다. 그래서 수술케 했다. 깡통 몇 개를 들고 입원실을 찾았을 때에『신부님 이제 살았습니다』하고 활짝 웃던 그 모습 아직도 생생하다.
나를 이용한 반액 할인을 위한 연극인지 정말 병자성사를 받고 죽으려 했는지 지금도 모른다. 알 필요도 없다. 기회 있을 때마다 그의 안부를 묻는다. 비단 그 할머니뿐 아니라 신부를 속이려는 신자가 혹 있다.
그럴 때마다 속아주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신자들이 나를 이용해서 이익이 된다면 얼마든지 속아주마고 신부는 위나 옆에는 속을 수 없지만 아래로는 속아도 괜찮다. 신부는 위나 옆을 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아래를 보며 생의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