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있는」사람들을 처음 대할 때는 누구나 어렵게 여기게 되고 존경하는 마음도 함께 지니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그 이상 만나면서 그 사람의 실상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게 되면 어려운 태도와 존경하는 마음이 다 같이 줄어들게 된다. 심한경우에는 경멸하게 되는 수도 있다.
그 이전까지는「허상」만 보아왔었던 터여서「존경」할 수 있었으나「실상」을 보면서부터는 그런 마음이 내키지 않게 된 것이다.
보통 사람이 성직자나 수도자를 대할 때도 이런 요소가 작용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모르고 지내거나 먼발치에서 보기만 할 때는 퍽 거룩하게 여겨지던 신부ㆍ수녀들이 막상 가까이서 친하게 지내다 보니 인간적인 약점이 드러나서 조금은 덜 거룩하게 여겨지는 사례도 있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이것은 설익은 친교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명사건 성직자건 간에 그가 과연 진살한 사람이라면 깊이 알려질수록 더욱 존경을 받게 되고 더 한층 거룩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분은 과연 성직자야』하는 감탄의 이야기를 곧 잘 하게 된다.
지난달 27일부터 재공연의 막을 올린 극단 실험극장의 번역극「신(神)의 아그네스」는 그런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으로 원작(존ㆍ필모어)에서부터 연출, 연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출중하고, 특히 가톨릭 수녀 이야기를 다룬 것이면서도 보편성을 지니고 있어서 관객들을 크게 끌어당기고 있는 연극이다. 아기를 낳아 탯줄로 목을 감아 죽인 젊은 예비 수녀 아그네스(Agnes는 라틴어식 발음으로「아녜스」가 옳고 영어식으로는「액니스」라야한다)와, 그에게서 기적을 발견하고 싶어 하는 수녀원장과 아녜스의 정신분석을 맡은 의사, 이렇게 세 여자만을 등장시키고 있는 이 연극은 설정 자체가 손님을 끌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82년부터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장기공연 된 바 있고 서울에서도 83년 8월 15일부터 84년까지 4백 24회나 막을 올린데 이어서 이번에 다시 무기한 연장공연에 들어간 이 작품에는 아녜스역의 윤석화(尹石花)만 계속해서 출연하고 있고, 수녀원장 역은 이정희(李貞姬)에서 이혜나로, 의사역은 윤소정(尹小晶)에서 정혜나로, 그리고 연출은 윤호진(尹浩鎭)에서 젊은 여성 연출가 송미숙(宋美淑)으로 바뀌었으나 극의 흐름은 오히려 참신한 맛을 더해준다.
다른 연극과 마찬가지로 젊은층, 특히 대학생 관객이 많이 몰려들고 있다는 점에서「신(神)의 아그네스」는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정신적 갈증을 어느 정도 풀어주고 있다고 하겠다. 다만「예비수녀」와「허원수녀」의 구별도 짓지 못하는 안목에서「수도자」에 대한 인식을 잘못함으로써「존경하고 거룩하게」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모름지기 종교극은 인간 최대의 관심사인 신(神)의 문제를 어떻게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느냐가 중요한 것이고, 「신(神)의 아그네스」이 연극은 신(神)과 인간, 기적과 사랑을 찾으려는 현대인의 고뇌가 담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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