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본당의 폐허 책임을 누구에게도 묻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공동체의식으로 이 본당을 다시 살려야 할 책임 또한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도를 사제생활 20년의 마지막 임지로 삼고 재건에 동분서주하는 4대 주임 김종남 신부는 누군가 해야 할 일을 맡았다는 듯 의욕에 차 있다.
신부로서는 파격이랄 수 있는 다양한 사회활동 특히 4년간 광주와 목포 MB C라디오 아침 명상프로를 맡아 전남지역에서는사회적으로 더 알려진 신부이다.
광주교구 참사위원에 전남 제1의 목포 경동본당 주임에서 누구도 꺼리는 완도로 자원해 떠나던 날 신자들은「능히 그럴 수 있는 신부」라고 이해하면서도 이별을 서러워했다.
게다가 김 신부는 수 년 전 수술로 위가 정상인의 1/3밖에 안 되는데 다 십이지장마저 대부분 잘라낸 건강이다.
그런 육체와 남은 사제생활을 완도에 바치겠다는 것이다.
『사람은 그가 걸어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을 선택한 이상 어려움과 희생이 따르더라도 가야 한다고 신자들을 가르쳐왔습니다. 작녁 11월 이곳에 온 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왔다는 만족과 감사를 드리며 삽니다』
김 신부는 부임 3개월간 연구 분석 결과『성당만 중심지에 옮길 수 있다면 재건에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완도는 옛부터 미역과 해태의 중심지로 발전 추세에 있고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것. 지금도 미역의 수출 창구로 해태 미역철에는 매일 1만여 명이 백여 개 미역가공공장에 동원되고 유입노동자 (주로여공) 만도 1천여 명에 달한다.
김 신부의 의욕은 본당 재건에서 한 발 나아가 이 공들을 위한 복지시설 마련에까지 이르고 있다.
「미역순이」로 불리는 여공들은 1시간 임금이 80원. 월 2만5천 원 미만의 낮은 급료에 무지 빈곤으로 윤락과 미혼모가 속출하는 심각한 윤리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 그는 지금 본당 재건과 근로자 복지시설 마련이라는 두 개의 어망을 짜고 있다.
급한 것은 본당 재건을 위한 어망인 성당 신축.
20명 신자에 너무 큰 계획이 아니냐는 질문에 金 신부는 이렇게 대답한다.
『한국 교회는 이보다 더 어려운 여건에서 출발 지금은 1백만이 넘습니다. 저와 보잘 것 없는 20명 신자이지만 기도하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리고 공동체 건설의 정신으로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들에게는 기도와 전교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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