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第二) 이사야서(Ⅲ)
42장은 하느님이 개입하시는 새 사건으로 계약역사가 투명하게 드러나면서 사막은 초 으로 바뀌며 하느님은 그의 백성을 놀라운 모습으로 인도하실 것이다(42, 5ㆍ17). 그런데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고귀한 사명에 청맹과니의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따라서 이렇게 스스로가 자초한 화의 대가를 받지 않으려 핑계 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밝힌다(18~28절)
그러나 야훼께서 이스라엘을 되찾으시려 말씀을 걸어오는43장은 44~45장까지 포함하여 하느님이 선민을 돌보시는 자상함과 함께 이방민족을 일으키시어 그를 통한 이슬라엘의 해방을 알려온다.
야훼께서는 이제 당신 종「고레스」를 선택하시고 기름 부으시어 생명의 말씀에 흠뻑 젖게 한 후 당신의 증인으로 내세우신다. 따라서 광야에는 길이 트여 모든 것이 하나인 세계로 모여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분을 찬양하리라.
이때 우리는 하느님의 음성을 잘 들어 그분의 계획을 망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은밀하게 말씀을 걸어오시는 분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기도의 분위기를 만들어야할 것이라고 이끌어준다. 나아가 작은 일에 소홀히 하여 하느님께 정성을 쏟아않는 것과 인색함으로써 하느님의 것을 거스리지 말라는 경고가 곁들인다.
그런 중에도 신판보다 자비가 더 크신 하느님의 초대가 잇따르니 회개와 죄 사함을 그려 깨달은 자를 당신 품안에 받아들이시는 무한한 용서가 부각된다.(43, 14~28).
44, 24~45ㆍ25은 이미 앞에서 다루었던 주제로 이교인인「고레스」를 선택하게 된 이유와 그를 통한 해방의 기쁨이 섬세하게 묘사된다. 그러나 여기서 주지할 것은「고레스」를 포함한 지상의 모든 통치자들은 결국은 하느님의 도구로서 선택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분수를 모르고 권력을 종횡무진 휘두르는 자는 하느님 보시기에 가소로울 뿐이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미래를 예언하는 말씀 안에 우상과는 비교될 수도 없는 하느님의 신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사야는 우상숭배의 우매함을 특별히 지적하면서 진정한 것을 목마르게 갈구할 때 하느님은 더 풍성한 은총을 공급해주신다고 약속한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하느님으로 온전히 채워 그분을 체험할 때 우리는 자신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우상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46~47장은 바빌론의 몰락을 시적으로 읊으면서 하느님에 대한 유일신 사상을 절정에 이르게 한다.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진 바빌론의 신들인 모든 우상들은 그것들을 만들었던 인간에 의해 운반되어 인간이 정한 장소에 놓인다.
이 우상들은 정해진 그 자리에서 자기 스스로는 한 발 짝도 떠날 수 없을 뿐 아니라 재앙을 당한 무리들이 도와달라고 아우성쳐도 한 톨의 도움도 줄 수 없는 무능이 잘 드러난다.
그러나 야훼는 『나는 여전히 너희를 업고 다니면서 너희를 살려내리라』(46. 4)하시니 어떤 사람은 자기 신(神)을 업고 메고 다니나 하느님을 예배 하는 자는 하느님에게 업혀 구원함을 받는다는 말씀이 큰 위안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과연 어느 쪽인가? 삶의 여정에서 영원히 썩지 않을 열매를 맺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요한15, 16)이, 이사야의 이 외침에 어우러져 오지 않는가!
바빌론을 사치와 방종에 빠진 여인으로 비유한 47장은 하루아침에 허무러질 운명을 가지고도 깨닫지 못함을 조롱 섞어 읊는다.
바빌론의 결정적인 운명 앞에 마술사들은 하나의 힘도 쓰지 못하고 그들의 행위는 오히려 비굴스럽게 드러난 부분이다.
제일부(第一部) 마지막장인 48장은 바빌론의 멸망과 고레스를 통한 승리를 예고하는 결부분이다. 동시에 제이부(第二部)를 연결하는 교량역할을 하기도 한다.
먼저 과거 이스라엘의 그 변덕스러움과 냉담함을 엄하게 다룬 후 하느님의 자비가 얼마나 무한한지를 대조시킨다. 그분의 용서 안에 드러난 자비의 극치는 하느님의 권능과 영광을 거듭 강조 한다『불의한 자에게 잘 되려니 생각 말라』(48, 22)고 못 박으시는 말씀은 지금까지의 총 결론이나 진배없다.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느님은 불안에 떠는 당신백성에게「평화」를 선사하시는 것이 당신의 목적이다(요한20, 19). 우리가 창조주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 동참하려면 악인에게는 결코 평화가 없다는 이 말씀에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영원히 외로우시고 용서를 베푸시는 하느님안의 삶은 오늘 내안에 이런 평화가 있는가를 반성하게하며 내일 이를 맞아할 수 있는 비결을 숙고하게 한다.
이렇게 40~48장까지는「평화」를 선사하시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은밀한 속삭임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부분이다.
지금 나는 그런 것을 발견하여 얻고 있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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