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다. 이는 곧 어릴 때 습관이 한 평생까지 깊은 영향을 준다는 말이다. 성인 성녀들의 행적과 거기에 얽힌 아름다운 일화들은 어린이들의 신심을 굳히고 그들의 인격을 형성하는 과정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에 본보는 동심을 티없이 맑게 키워가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이번 호부터 어린이를 위한 성인 성녀들의 얘기를 소개한다<편집자>
프란치스까의 집안에는 늘 웃음과 기쁨이 떠나질 않았다. 여섯 어린이들은 엄마의 치맛자락에 매달려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졸라들 댔다. 저녁이면 엄마는 아이들과 함께 기도를 드리고 잠이 들었다. 그러나 성녀가 살던 그때는 사회적으로 대단히 혼란하고 불안스러웠다. 그래서 남편과 큰아들이 밤늦도록 귀가하지 않으면 엄마는 마음 조이며 불안스레 기다렸다. 어느날 밤, 아빠는 혁명에 가담하여 싸우다가 부상을 입고서「로마」거리에 쓰러졌었는데 친구들의 도움으로 재빨리 도망을 갔다. 엄마는 그런 줄도 모르고 밤새도록 뜬 눈으로 아빠를 기다렸지만 허사였다. 그 후 며칠 후에는 큰아들마저 영여 돌아오지 않았다. 적들이 아들을 포로로 잡아갔기 때문이다. 늘 쾌활하던 엄마는 남은 자녀들과 함께 매일 울며, 기도하며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아직 고통이 끝나지 않았다. 바로 그때 아주 심한 페스트 유행병이「로마」시를 온통 뒤덮고 있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몽땅 이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엄마는 이제 외톨이가 되었고 마음은 찢어지듯 괴로왔지만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엄마는 좋은 옷들을 벗고 노동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값진 재산들을 모두 팔아 그 돈으로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느닷없이 아빠가 돌아왔다. 프란치스까는 너무 기뻐 어쩔 줄 몰랐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후 아빠는 엄마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함께 영영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다시 홀몸이 된 프란치스까는 수녀원을 세우고서 매일 가난한 이들을 도우며 평화스럽게 살았다.
이젠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가난하고 병든 이들에게 사랑과 기쁨을 줄 수 있게 되어 기뻐하였다. 힘든 노동으로 지치고 고달팠지만 기도하기를 결코 잊지 않았다. 성녀는 언제나 곁에서 다니며 보호하는 수호천사를 보았고 보통사랑들과 이야기하듯 대화를 나누었다. 프란치스까는 15세기의 로마 성녀로서 오늘날 많은 부인들의 특히 어머니의 주보로서 공경을 받고 있으며 축일은 3월 9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