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二 이사야 예언서 (Ⅰ)
Ⅰ개관
1.시대배경
일명「위로의 책」이라고 불리는 제이(第二)이사야(40~55장)를 쓴 저자의 활동 시기는 바빌론 제국이 페르샤에 몰려 사양길을 치달을 때였다 (기원전 550~540).
바빌론「나보니두스」(Nabomid-us, 556~539년)는 하란출신 아랍계 귀족가문의 자손으로서 「라바시 마르둑」(Labashi-marduk,556년)의 왕위를 찬탈한 인물이다.「나보니두스」가 칼로 권좌를 차지한 후 바빌론제국은 내분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지방 국가로 전락해가는 가운데 국내의 당파싸움은 심화되어만 갔다. 한치의 양보도 없이 자기들의 이권에만 혈안이 된 위정자들의 가소로운 행위들은 서로를 불신하고 반목시기하는 국민풍토를 조장 시키는데 만 기여했다. 따라서 비상시에 대비할 준비라고는 빈손뿐이었다.
이 시기에 바빌론의 동쪽에 위치한 페르샤의 고레스(CYRUS, 559~530년)가 세계원정에 나선다. 549년 고레스는「엑바라나」를 점령하면서 메데와 페르샤의 왕(王)으로 군림한다. 이때 바빌론제국은 예레미야와 에제키엘 그리고 제2이사야가 예언한 것처럼 지상에서 사라져갔다(기원전539년).
이는 나라 안이든 나라 밖이든 또는 개인이든 공동체건 간에 공동체의 선익보다는 자신의 의사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무리들의 고집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숱한 실례중의 하나다. 부귀영화는 오래가지 못하나니 지금도 우리는 불이익에 눈이 어두운자의 비참한 최후를 보고 있지 않는가!
이런 와중에 이스라엘의 처지는 느부갓네살이 죽은 후 (562년) 악질 마르둑 (562~560년, Am-el-marduk)이 왕위를 계승하자 어느 정도 자유로운 처지로 개선되어 갔다. 포로로 잡혀온 유다의 여호야긴 왕(王)이 석방되면서 볼모왕(王)으로 특대우 받기 시작했다.(열왕기 하(下)25,27). 이런 사실은 유배민들이 어느 정도 자유로운 처지에서 각종 직업에 종사할 수 있었다는 것을 엿보게 한다. 상인 또는 고급관리로서 직위나 경제적 안정을 찾은 무리가 늘었던 것이다 (다니엘 1).
이렇게 바빌론의 무능력한 위정자들이 헛점을 드러낼 때 고레스의 등장은 이스라엘의 희망을 안고 왔다.
이런 때 사제들은 고대전승을 수집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하느님께 버림받은 듯한 비참한 처지를 숙고하기에 이르러 자기들의 역사를 반성하는 가운데 힘들고도 귀중한 작업을 추진해갔다. 따라서 어느 때 보다도 더 강하게 거룩한 백성임을 절실히 느꼈던 것이다. 세계 안에서 자기네가 부여받은 이 귀중한 유산을 지속시키려면 그 특유의 삶을 지켜야 한다는 자각 아래 새 여정을 마련했으니 이것이 바로 「제관계 문헌」의 출산인 것이다.
그러므로 새롭게 안정된 생활에 안주하여 이 교신에 현혹되는 무리가 없진 않았지만 고레스의 해방령으로 본향에로의 귀향을 서두르는「남은 자」들의 회동이 희망적이다. 이들은 「좋은 무화과」에 비유된 무리로서 이방의 대수도가 현혹하는 황금과 우상도 결코 그들을 잡아두지 못하였다.
이들이 현세적 안정을 뿌리치고 귀향할 수 있게 용기를 준 것은「해방의 기쁜 소식」을 안고 온 第 2이사야의 역할이 컸던 것이다.
2.저자와 친저성.
에제키엘의 선초가 끊긴지 20년 만에 익명의 새 예언자의 외치는 소리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제이(二)이사야라 불리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 사상, 희망, 그리고 문체 등을 살펴보면 제일(第一) 이사야와 너무나 흡사하여 시대차이가 엄청나지만 이사야서 후반부에 삽입한 것으로 본다.
40~55장이 이미 본란(78호)에서 언급했듯이 원 이사야의 저술은 아니다. 이 증명은 기원후 18세기에 와서야 분명한 문제로 제기되면서 그 증명이 이뤄졌다.
왜 이사야서를 하나의「선집」으로 보는가?
예언자들은 미래의 사정을 설교할 때도 항상 동시대의 사람들을 상대로 선포했다. 그런데 40~55장은 원 이사야의 시대인 기원전 8세기가 아니라 6세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즉 원 이사야시대는 유배를 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도 건재했으며 바빌론제국도 그때는 아시리아 제국의 일개지방 도시에 불과했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볼 때 바빌론제국의 말기인 550~540년에 이사야의 제자로 보여 지는 익명의 시인이 40~55장을 기술했다고 본다.
이 부분은 1~39장의 분집보다 훨씬 통일된 짜임새를 보여주며 그 필력은 세상의 모든 계층에 감흥을 주는 시적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를 구약의「단테」라고 부르기도 하며 희랍의 대서사시「일리아드」의 저자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는 성경의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불씨를 키우는 인물로 등장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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