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제키엘예언어(끝)
제4부 40~48:수복된 이상사회를 그리는 결론부분으로 이스라엘이 부활하리라는 위로의 메시지를 담은33~39장과 연결되나 성전재건과 그에 따른 공동체 예배의식을 다루기 때문에 이 부분을 독립시킬 수 있다.
특히 성전이 모든 것의 중심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주제가 두드러진다. 8~11장에서 이스라엘의 가증스런 행위들 때문에 야훼의 거룩한 얼이 더 이상 머물 수 없었던 성전이 이제 새롭게 단장하여 (40~42)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나 성전의 본 모습을 되찾는다(43).
그리고 이 새 성전에서 지킬 모든 규정과 사독가문의 사제들은 레위인의 보조를 받아 모든 종교문제를 관할해야 한다는 일련의 지시가 따른다(44).
이어서 땅의 분배는 먼저 야훼께 바칠 거룩한 몫을 떼어놓고 할 것이며 지도자의 책임은 법과 질서를 옹호하되 항상 백성들의 선익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지시한다. 그리고 제물을 준비하여 종교공동체를 지원해야 할 것이며 정기 축제일을 지켜야할 의무에 대하여 소상하다(45~46).
47장에서는 이 성전 밑으로부터 생명의 강이 흘러나온다. 여기서 본 단락의 절정에 이른다. 이 강물은「사해」로 흘러가 그 죽음의 곳이 생명의 물로 넘실대는 호수가 되게 할 것이며 강 양쪽 언덕에는 항상 신선한 과일이 열리는 나무가 무성하게 자랄 것이다. 그리고「엔겐디」지역에서는 어부들이 그물을 쳐놓고 물고기를 잡을 것이며 이 물줄기가 흐르는 곳마다 생명으로 넘실거릴 것이다. 마치 창세기의 낙원처럼 여기서도 열매 맺는 나무와 강이 새 시대의 동인(動因)이 된다(47, 1~12).
이어서 땅의 경계선과 지파간의 분배를 마무리 지우면서 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함께 봉사함으로 일치를 이룬다. 그런데 새롭게 단장한 예루살렘 도성은 이제「야훼 삼마」(야훼 여기 계시다)라는 새 이름으로 불리면서 에제키엘서의 대장전을 마무리한다. 이 마지막 단락을 통해 에제키엔의 제관다운 가르침이 유배 중에 움 돋았던 유다이즘에 얼마나 깊이 스몄는지 엿볼 수 있다.
Ⅲ 종교적 교훈
인간은 절망과 어려움에 처할수록 갖가지 유혹에 노출된다. 이스라엘은 죽음의 행군을 하면서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제기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때 에제키엘은 갖가지 상징적 행동으로 하느님이 이교땅에서도 그들과 항상 함께 계신다는 그분의 뜻을 적재적소에 맞게 전하여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다.
1) 인간이 하느님을 떠나 생활할 때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전한다.
이스라엘은 어떤 일이 있어도「예루살렘 도성」은 무사하리라고 맹신했다. 따라서 도성의 폐허는 그들의 맹신을 무참히 짓밟았으며 하느님이 패배했다는 절망감을 몰고 왔다. 이때 예언자는 이 모든 것은 그들이 하느님을 거역한 댓가로 하느님이 내리치는 매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하느님은 인간이 죽을죄를 지어도 죽는 것만은 원하지 않으신다. 따라서 회개하여 하느님의 집으로 돌아오라는 초대로 자비하신 하느님을 무한히 펼쳐 보여주고 있다.
2)시공을 초월하여 계신 하느님은 역사를 주관하신다. 이는 하느님의 우주적 보편성을 발전시킨 것이다. 하느님은 결코 제한된 어느 한 곳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으로써 당신이 창조하신 우주만물을 계속 보살피신다. 따라서 온 세상에 실재(實在)하시고 현존(現存)해 계시는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고 가르침을 받기위해 어디서나 함께 모일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3)하느님은 우리와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당신께로 부르신다. 이제 처벌의 연대성을 강조하던 옛 전승을 부인하고 「죽을 사람은 죄를 지은 장본인이다. (18,20)」라는 선언 속에 붕괴되어가는 계약 공동체의 현실을 직면하여 살려면 각자의 내적(內的) 회심선 조건이라고 선포한다. 이렇게 하여 죄악으로 닫힌 마음에 새 장을 마련한다. 특히 인간의 뉘우침을 강조하여 은총과 용서의 심오함 안에서 죄악으로 바서 라진 우리가 재생할 수 있도록 이끈다.
4) 하느님은 생명의 근원이시다. 하느님은 죽음의 도성에 생명수가 흘러넘치게 하시는 자비와 사랑자체이시다 이 생명의 자리는 착한 목자의 비유(34), 마른 뼈의 환상(37), 성진으로부터 흐르는 강물의 비유(47), 회복된 성도의 이름(48,35) 안에서 흘러넘치게 묘사되어 나온다.
생명과 죽음, 희망과 절망의 차이는 「주님이 여기 계신다」는 임재와 부재의 차이일 것이다. 우리는 선인이든 악인이든 모두 육신의 죽음을 맞는다. 이 잠정적인 죽음 앞에서 영원히 죽을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자. 그래서 오늘도 진정한 삶이 피어나는 영성화의 길로 초대하고 있는 예언자 에제키엘의 절규에 몸담으면서 결단하지 않으려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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