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키엘예언서 (Ⅳ)
2장에서 소명체험이 계속되고 있다. 하느님의 聖性에 압도되어 읊조리고 있는 예언자 앞에『너 사람아 일어서라. 내가 너에게 할말이 있다』하시면서 기운을 불어넣으신 하느님께서는 오늘날까지 반항만하는 낯가죽이 두꺼운 무리에게 하느님의 사람을 보내신다. 그들이 말씀에 순응하든지 아니하든지 간에 하느님의 대변자가 그들 가운데 있음을 명확히 일러주신 것이다. 그런중에 하느님의 말씀이 담긴 두루마리를 받아먹으라는 명령이 있자 재앙과 슬픔과 통곡의 말이 기록되어 있는(2,9~10) 암울함이 예언자의 입으로 삼켜진다. 그러자 상여소리는 오히려 입에 꿀처럼 달고(3, 1~3) 이제 예언자는 아훼의 말씀에 사로잡혀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3, 16~21)지명된다. 결론적으로 에제키엘은 유배온자들의 정신적 타락과 파멸을 막아야할 소명을 받고 외로운자와 악한자의 구별이 뚜렷해지는 속에 메시지를 거부하는 우매한 자에 대한 책임은 더이상 지지않으신다는 경고가 함께 따른다.
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이 감히 생각지도 못한 능력의 하느님이심을 다시 확인시킨다. 불모의 땅 유배지에서도 본격적으로 예언자를 일으키시어 쇠가죽을 뒤집어쓴 뻔뻔스런 상판에 대응할 예언자를 무장시키시어 당신만이 참 하느님이심을 드러내실뿐만 아니라 하느님은 항상 그들과 함께 계심을 증명하신다.
본론:第1部(4~24)는 예루살렘이 함락 되기전인 기원전 593년부터 587년까지의 설교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심판신탁이다.
이스라엘은 야훼의 심오함을 단숨에 다 깨우치지 못한다. 망국의 설움을 삼키는 연륜 속에서 생활의 체험을 통해 하나를 깨닫고 둘을 익혀나간다. 예언자는 시종일관 백성들이 과거 저질렀고 지금도 저지르고 있는 수없이 추한 만행을 들먹이면서 그들에게 내릴 야훼의 의도는 세상 그 어느 것도 당해낼 수 없을 것이란다.
4~5장은 괴상한 상징행동을 통해 예루살렘의 멸망을 암시한다. 벽돌과 철판의 상징행위는 예루살렘이 포위되고 (4, 1~13) 식량의 절대부족으로 오는 한정된 배급량은 굶주림에 허덕이는 양상이 생생하다. 나아가 온갖 걱정이 몰려와 안일했던 생활은 메어침을 당한다(4장).
칼로 머리를 깍아 세부분으로 나눈 행위는(5장) 예루살렘백성에게 내리칠 세가지 운명을 그리고있다. 하느님은 열국이 보는 앞에서 선민의 죄악을 심판하시어 그 참상과 이산의 고통이 얼마나 쓰라릴 것인지를 묘사한다. 6~7장은 앞단락과 연결되는 부분으로 지금까지 보여준 무언극의 의미를 산문체로 설명하면서 특히 7장에서 『동서남북 어디에서나 끝장이다』라는 선고가 뇌리를 강타하니 끝점이 눈앞에 다가와 있음을 실감시키고 있다.
8~11장은 592년에 에제키엘이 환시중에 들어올림을 받아 예루살렘의 가증스런 죄악을 목격한다. 거룩하신 야훼께서 머무신 성전에 온갖 우상이 세워져있고 이를 향해 경배하는 무리의 추잡한 만행이 야훼로 하여금 그 패역한 곳을 떠나시게 하는 부분이다. 하느님의 영광이 자리잡고 계시던 거룹에서 떠올라 성전문턱으로 나오신다(9, 3). 이어서 야훼의 명령이 내린다. 죄악의 도성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역겨워 우는 무리의 이마 위에는 특별한 표시를 하고 나머지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가엽게 여길 여지없이 마구치라 하시니 성전과 온성안은 피바다를 이룬다. 그들은 야훼가 돌보지 않는다고 하면서 온 나라안에 유혈참극을 벌리고 부정부패로 도시를 채운 처사는 결코 그저 넘어가지 않으리라는 판결이 온땅을 진동한다.
그러나 이 섬멸하시려는 야훼의 의노앞에 에제키엘이 목놓아 호소한다.
그러자 야훼께서는 그들의 마음에 박힌 돌심장을 제거하고 피가 통하는 살심장으로 바꾸어 당신의 규정을 따르는 백성의 무리로 만들겠지만 구역질나는 우상에 마음을 뺏긴 무리들은 반드시 그 소행대로 갚으시리라하신다. 이제 야훼의 영광은 죄악의 도성으로부터 더이상 머무르실수 없어 성전 문지방을 지나 차츰차츰 떠나기 시작한다(10, 4)
마지막으로 당신 이름을 심었던 그 도시에 작별을 고하는듯 예루살렘 동쪽 올리브 산위에 다시 멈춘다(11, 22~23). 이 장면은 구원을 가져다주신 주 예수님께서 패역한 도성을 바라보시면서 비통해 하시던 그 절박감을 떠올리게 한다(마태오23, 37~39). 예루살렘이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현존 하시기에는 너무나 부당했기에 하느님께서 그 자리를 떠나셨다면, 예수님을 모시는 나의 마음은 과연 예루살렘 시민이 저질렀던 불신앙의 요소없이 떳떳하다 할수 있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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