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시험 볼 때 조금은 떨렸지만 모든 것을 알고계시는 하느님이 꼭 이루어주리라 믿었습니다.』
지난 8월 24일 발표된 대입검정고시에서 63세라는 최고령의 나이로 합격한 이정숙(바울라) 할머니.
뜻밖의 기쁜 소식에 만면에 미소를 띄우면서도 모든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는 신앙인다운 겸손함을 잃지않았다.
「못배운게 한(恨) 이 되어」한글반에 문을 두드린지 3년. 수도학원을 다니면서 10대의 어린 학생과 어깨를 맞대는게 어쩐지 쑥스럽고 주책이라는 생각도 들었으나 「배움」이 너무 좋아 12년의 교과서 과정을 3년만에 중입검정고시 고입검정고시를 거쳐 모두 마스터해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글자 하나 쓸 줄 모르는 문맹자였는데 이렇게 대학 입학까지 꿈꾸게 되다니 정말 믿어지지가 않아요. 도와주신 많은 분들께 단지 감사 드릴뿐입니다.』
이정숙 할머니는 1924년 중국 만주에서 가난한 농부의 셋째딸로 태어났다.
집안 형편상 감히 「여자가 공부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고 시대상으로 이국(異國) 에서 공부할 여우도 없어 어린 가슴에 「언젠가 귀국하면 꼭 국적있는 공부를 해보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6·25로 남편이 병사하고 어린 자식들만 덩그러니 남게되자 이 할머니는 「아버지 없는 자식」소리를 듣게하지 않기 위해 어머니로서의 희생적인 길을 걸어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광주리 장사 봇불장사 식당종업원 등 온갖 궂은 일을 닥치는데로 하면서 3자녀를 모두 훌륭하게 키워 출가시킨 이 할머니는 노령으로 더 이상 일자리 구하기가 어렵게되자 푼푼히 모아둔 돈을 털어 그토록 원하던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
나이 많으면 받아주지 않을까봐 학원 앞을 서성거리다 돌아가기를 수차례, 결국 나이를 3살이나 깎아서 등록한후 할머니는 층층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어려운 영어단어를 외워나갔고 모르는 수학문제는 선생님께 극성스럽게 매달렸다.
손자뻘되는 학생들도 맨 앞좌석은 할머니를 위해 일부러 남겨놓았고 학원측에서도 할머니의 정성에 감동, 2년동안 전액장학금을 지급해주는 등 특혜를 베풀었다.
그러나 할머니가 주저앉고 포기하고 싶을때 제일 큰 힘이 되어준 것은 무엇보다 하느님을 향한 깊은 신앙.
슬하의 3자녀를 모두 영세시키고 지금도 학원수업과, 시장에 찬거리를 내다팔며 생계를 이어가는 것외에 할머니의 평일미사 참례는 빠뜨릴 수 없는 일과중의 하나다.
『신앙이 없었다면 이겨내지 못했을 겁니다. 앞으로도 하느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남을 위해 일하고 싶어요.』
대학에 간다면 국문학을 전공해서 한글을 가르치고 싶다는 이정숙 할머니는 『어떤 일이 있어도 시대를 핑계삼지 말고 꿋꿋하게 배워나가야 한다』고 근로 청소년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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