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섭리와 악
1, 그리스도께 대한 언급없이는 악과 고통을 하느님섭리와 조화시키는 문제에 결정적인 대답을 할 수 없다. 한편으로 그리스도께서는 가난과 굴욕과 수고로, 그리고 특히 자신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 하느님께서 고통중에있는 모든 인간과 함께 계시며 진실로 그분께서 인간의 지상실존의 여러거지 고통을 그분 스스로 자신다지는 것을 확언하신다.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고통이 속량적이고 구원적인 가치와 힘을 지니며 그것을 통해서 성 베드로가 그의 첫째 서간에서 말하는 『시들지않는 분깃이 마련된다』는 것을 계시하신다. 그래서 섭리에 대한 진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힘과 지혜』를 통해 그 결정적인 종말론적 의미를 얻게된다. 그래서 성베드로는 첫세대 크리스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황그보다 훨씬 더 귀한 여러분의 믿음은 많은 단련을 받아 순수한 것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는 날에 칭찬과 영광과 영예를 차지하게될 것입니다』(1베드로1, 6~7).
고통의 수수께끼
2, 성 바오로는 로마서에서 『성령을 하느님의 첫 선물로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날 즉 우리의 몸이 해방될날을 고대하고있는 이들』의 「내적 신음」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고통과 우주의 고통을 모든 피조물이 일종의 『진통을 겪고 신음하는것』과 견주어 말하고있다(8, 22~23참조). 그러나 그는 덧붙여 말한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하느님께서 모든 일에 있어서 좋은 결과를 이루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서8, 28).
고통은 따라서 비록 지상의 인간운명의 가장 어두운 면으로 나타날 수 있을지라도 신앙의 눈으로 볼 때 그리스도의 계시. 특히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에 담긴 하느님 섭리의 신비를 우리로 하여금 섭리의 신비를 우리로 하여금 보도록 허락해 준다. 2차 바티깐 공의회가 말하듯이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안에서 고통과 죽음의 수수께끼가 풀린다』.
결론적으로 창의 신비와 밀접히 관련되어있는 섭리에 대한 진리는 진리전체, 신경전체의 맥락으로 이해돼야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안에서의 인간과 세상의 「예정」의 계시, 전체 구원경륜의 계시와 역사안에서의 그 실현이 유기적으로 하느님 섭리의 진리안으로 들어간다. 하느님 섭리에 대한 진리는 또한 하느님 나라의 진리와 대단히 밀접하게 된다.
공의회가 말하는 섭리
3, 섭리는 하느님의 영원한 창조계획으로서, 그리고 이 계획의 역사내 수행으로서 그리고 또한 우주와 특히 만물의 중심이며 축인 「그리스도안에서의 예정」에 의한 인간세계의 구원적·종말론적 완결로 이해된다.
그러면 하느님 나라의 「성장」과 세계의 「발전」은 어떻게 조화시킬것인가? 볼수있는 세계안에서 남자와 여자는 역사적 발전과 문화적 발전의 주역들이다.
공의회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은 땅과 그안에 있는 모든것을 지배하며 외롭고 성스럽게 우주를 통치하고 하느님을 만물의 창조주로 인식하며 자신과 전우주를 하느님께 바쳐드리라는 명을 받았다. 따라서 인간은 만물을 인간에게 복종시킴으로써 하느님의 이름이 전우주에 빛나도록해야 한다』(목헌장34)
불균형과 인간의 마음
4, 하지만 공의회는 개인차원에 있어서나 공동체차원에 있어서나 오늘날 인간의 발전에 관련되는 엄청난 문제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공의회는 사회·경제조건속에, 인간의 전망과 양심속에서와 마찬가지로 삶과 문회속에, 가족속에, 사회관계속에 그리고 단체와 공동체와 국가들간의 관계속에 『빠르고 무질서한』진보가 낳은 『모순과 불균형』을 명쾌하게 지적한다. 그 결과 『상호불신과 반목과 분쟁의 불행이 생기며 인간자신이 이런 불행의 원인인 동시에 제물이 되고만다』 (사목헌장8~10참조). 마지막으로『사실 현대세계가 고민하는 불균형은 인간마음 속에 뿌리박힌 보다 근본적인 불균형에 직결되어있다』고 말할때 공의회는 그 문제의 뿌리에 도달한다.
만일 발전이 윤리적 법칙의 판단기준에의해 지배되지 않으면 비극적인 재앙을 가져오는 인간의 인간지배를 낳을 수 있다. 현대인의 위대함과 한계도 인정하면서 공의회는 인간을 지원하고 도우려오는 하느님의 섭리를 인간에게 일깨워준다.
섭리와 하느님 나라의 성장
5, 공의회는 현재의 인간조건속에 인간과 인류의 참된 진보에 가장 근본적인 장애물인 윤리적 악, 죄의 현존을 일깨워준다. 그 결과『인간은 자신안에서 이미 분열되었다. 이때문에 개인생활이나 집단생활이나 인간생활 전체가 선과 악, 빛과 어두움 사이의 극적인 싸움으로 나타난다.
더구나 인간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악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없음을 발견하고 어떤 사슬에 묶인것처럼 느낀다』(사목헌장13). 『이 전투에 말려든 인간은 선에 충실하기위해서 끝없이 싸워야하고 하느님의 도우심과 비상한 노력없이는 자신의 통일을 획득할 수 없다』(사목헌장37).
만일 하느님 나라의 성장이 세상의 진보와 동일시되지 않는다면 하느님나라가 세상속에 있다는것과 무엇보다도 세상속에서 살고 일하는 인간안에 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결론적으로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역사의 진보를 위한 자신의 투신과 하느님 은총의 도우심으로 자신이 하느님 섭리의 계획의 역사적 종말론적 성취를 향해 그 나라의 성장에 협조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