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평신도사도직 협의회(회장ㆍ엄익채)가 제정한 제 4회 가톨릭대상은 올해 처음으로 정의부문에 홍남순(74ㆍ광주)씨를 첫 수상자로 탄생시켰다. 사랑부문에서 최경락(귀동ㆍ꽃동네) 백인근 (67ㆍ당진본당)등 2명과 함께 85년도 가톨릭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홍남순씨 등 3명의 수상자를 찾아 이웃상, 정의실현의 현장을 함께 추적해본다.
◆『정의』부분 첫수상자 홍남순 변호사
「광주의 아버지」로… 무료변론 앞장
「정의」부문 첫번째 수상자인 홍남순 변호사(74ㆍ광주시 동구궁동15). 『상을 받을만한 사람이 받아야지 나는 상을 받을만한 일을 한게 없는데…』수상소식을 전해듣고 이렇게 말하는 홍변호사는 광주지역에서는 「광주의 아버지」로 불릴만큼 사회정의, 민주화그리고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 편에서 꼿꼿하게 한평생을 살아왔다. 백발에 깊이 패인 주름은 외로운 투쟁의 성상을 말해주는듯 했지만 그보다는 온화하고 자상한 할아버지인상이 먼저 풍긴다. 「외유내강」의 소유자라는게 주위의 얘기이다. 10여년 법관생활 20여년 변호사 생활을 통해 청빈과 겸손 그리고 불의에 과감히 맞서온 그는 특히 양심의 소리를 외치다. 옥에 갇힌 학생노동자 지식인 종교인들 무료변론에 앞장서왔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 민족의 공익을 위해 정당한 일을 하다 고난을 받은이들에게는 구원의 길이 있어야 하는게 마땅한 일이 아니냐』이 같은 신념으로 그는 광주를 비롯 전국을 누비며 변론 부탁이 있으면 서슴없이, 나서곤한다. 『욕심을 안부리고 바르게 살다보면 용기는 저절로 생긴다. 사심이 있으면 절대로 용기가 안나온다』고 강조하는 그는 정치에 개입할 기회가 있었지만 초지일관 인권을 위해 힘써왔다. 광주사건 때는 수습위원으로 활동하다「내란중요임무종사죄」등이 협의로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5년 감형된 후 1년 7개월 옥생활을 하기도 했으며 86년 복권 후에도 인권상담과 양심수인을 위해 70노구를 이끌고 활동하고 있다. 30년이상 살고 있는 허술한 그의 한옥(대지50평ㆍ 건평30평)에는 특히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있다. 그는『기성세대가 무조건 젊은이의 외침을 막을 것이 아니라 정당하면 받아들이고 아니면 대화를 통해 설득하는 방법을 취해야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불교신자인 홍변호사는 부인 윤이정 여사와의 사이에 7남매를 두고 있다.
◆ 『사랑』부문 수상자 최귀동 할아버지
오늘의 「꽃동네」 탄생시킨 장본인
기쁜 마음으로 동냥을 하고 어렵사리 얻은 밥을 빌어먹을 힘조차없는 자신보다 더 굶주리고 불쌍한 이들과 나누면서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온 최귀동 할아버지(베드로ㆍ충북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 271꽃동네). 버림받고 병들어 갈곳없는 이들의 사랑과 나눔의 보금자리-오늘의 꽃동네를 있게한 장본인 귀동할아버지는 하느님의 뜻을 묵묵히 실천한 사랑의 화신이었다. 자기자신을 자랑할 줄도, 내 세울줄도 모르면서 주어진 삶에 충실했던 할아버지는 수상소식을 전해듣자『상은 무슨상, 난 상탈일 한적없어』라면서 고개를 저었다. 부잣집에서 태어난 귀한 아이라고 귀동이라 불리워진 할아버지는 일제때 징용으로 끌려가 북해도 탄광에서 강제노동을 했으며 이때 심한구타를 당해 뇌를 손상, 고향인 무극으로 후송됐으나 이미 선친의 아편중독등으로 집안은 풍비박산된 상태. 이때부터 시작된 귀동할아버지의 걸인 행각은 오웅진 신부를 만날때까지40여년간 한결같이 지속됐으며 얻어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는이들의 아버지 노릇을 해왔다. 정신병 고혈압 동상 등에 시달리면서도 사랑의 끈을 결코 놓지않았던 최귀동 할아버지와 오웅진 신부의 만남은 할아버지의 삶을 그대로 이웃에 확산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오신부를 만나기전 할아버지의 보금자리는 용담 산기슭의 다리밑 움막집. 81년 2월 자신의 움막 앞에서 쓰러진 후 반신불수가 돼 횔체어에 의지해야만 움직일수 있는 할아버지는『여기서의 생활을 그저그래. 할일이 없어』라면서 허공을 바라본다. 가물거리는 의식속에서도 『옛날 다리밑에서 살때가 더좋았어』라고 엷은 미소를 띄우는 할아버지는 분명 수많은 빈자에게 삶의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는 「거지천사」임에 틀림없다.
◆ 『사랑』부문 수상자 백인근씨
벽촌서 인술펴며 6백50명에 대세
벽촌에 파묻혀 의술을 통해 묵묵히 사랑을 실천해온 백인근씨(67ㆍ요한ㆍ충남당진군 송산면 상거리). 누구나 부러워하는「의사」라는 인기직업을 누린다는 것이 그와는 거리가 멀다.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일했을 뿐인데 송구스럽게 상까지 받다니, 감사합니다』꾸밈없이 소박하게 웃으며 말하는 백인근씨는 우선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 모습이었다. 주위 미신자들로부터도「살아있는 신앙인」이라고 인정받고있는
백인근씨에게 의사생활 43년동안 남과 다른점을 한가지만 든다면 대세를 주어 하느님 품으로 인도한 사람이 6백 50여명이나 된다는 점. 매일 점심을 라면으로 때우면서도 무료진료ㆍ영세민돕기ㆍ성당시설지원ㆍ 불우학생지원 등 가난한 이웃을 위해 기쁘게 봉사하며 사랑을 실천하고있는 그는 무엇보다 죽어간는 생명의 영혼을 구하는 일이 중요한 임무(?)였다. 『신부가 됐다면 훨씬 많은 영혼을 구했을텐데…』17세때 영세 입교하면서 막연하게 수사신부를 동경해온 꿈이 이렇게 의술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셈이다. 그는 또 수도생활의 미련을 못버려 프란치소꼬 3회 설립당시부터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어려운 일이 있을때는 항상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고 있다는 그는 37세때 고생을 함께해온 아내와 사별한후 1남 2녀를 홀로 키웠다. 혹시 자녀들에게 상처를 줄까봐 주위의 재혼 권유도 뿌리쳤다. 『엄마의 따뜻한 사랑을 못받고 자란 자녀들을 볼 때 미안한 감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1919년 평북 의주에서 태어난 그는 43년 만주서 의사 자격고시에 합격. 의료활동을 펴기시작했으며 53년 담진에 정착했고 서산 남면 보건지소장을거쳐 69년부터 현재의 송산 보건지소장으로 일해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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