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8일부터 27일까지 장장 20일을 끌었던 옥포 대우조선 노사분규는 한마디로 한국의 노동상황 전체를 돌아보게 하는 교훈의 장이었다.
젊은 노동자 이석규씨(21)의 죽음, 재야세력 개입을 둘러싼 논란, 장지선정과 관련된 갈등을 마지막까지 한치앞을 점칠 수 없었던 이번 분규는 기업과 노동자 모두가 「책임」과 「권리」의 동시성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는 명제를 남겨놓았다.
이런 점에서 서울 명동본당 보좌 양권식 신부가 분규타결, 곧 「책임」과 「권리」의 동시성을 일깨워 주기 위해 보여준 모습은 단연 돋보이게 마련이다.
-무척 피로해 보이는데….
『협상중재에 나선 열흘간 정도밖에 못했다. 마치 실어증(失語症)에 걸린것 같다. 그러나 분규가 원만히 타결돼 기쁘기 한이 없다.
-중재에 나선 동기는….
『현재로서는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다. 다만 중재요청이 있었고 교회의 배려가 뒤따랐던 것은 사실이다』
양신부는 동기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생길 수 있는 오해는 충분히 감수해 나가겠다면서 비교적 상세히 협상과정을 설명했다.
양신부가 현장에 도착한 것은 8월 17일 오전. 16일밤 자신의 차로 서울을 출발, 밤새도록 달린 끝에 이른 아침 옥포에 도착한 양신부는 배진구 신부(반송동본당 주임)와 해고 근로자들을 만난후 곧바로 현장진입을 시도했다.
바리케이트를 지키고있던 농성근로자들이 『불순 세력일 수도있다』며 바리케이트 옆에 쪼그리고 앉은 양신부를 멀리 「내다버리고」입장을 거절하기를 수차례. 무려 6시간에 걸친 양신부의 끈질긴 호소에 근로자들도 감복, 양신부는 가까스로 농성장에 들어갈수 있었다.
-중재에 나서기가 쉽지 않을텐데….
『집행부를 통해 전국 노동쟁의 현황과 그에 따른 정세를 분석, 제시했다. 함께 일해 보자는 제의에 모두가 수긍해줘 중재에는 어려움이 크지 않았다』
-구체적인 작업은 어떻게 해나갔나.
『각 작업장별로 집행위원 46명을 선임, 노조조직 강화작업을 우선 실시했다. 19일 2차 협상후 20일부터 실무소위원회를 조직, 임금ㆍ인권ㆍ복지문제순으로 심의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 안 또한 근로자들에게 거부당했다』
양신부는 이날 밤 폭우속에서 설득적업을 펴나갔으나 결국 농성은 가두시위로까지 발전, 22일 이석규씨가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앞서 21일 서울에 올라와 김우중 회장으로부터 새로운 조건을 얻어낸 양신부는 22일 오후 다시 현장에 도착했지만 이석규씨는 이미 사망, 상황이 더 악화돼있었다.
-당시 심정은…
『암담하고 분노가 치솟았다. 그토록 외부세력의 개입을 경고하던 치안당국이 명백히 외부개입을 했다는 사실에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놀라운 것은 경찰이 5백여 근로자들에게 오리걸음을 걷게한후 최루탄을 난사한 사실로 이는 현장목격자들의 공통된 증언이었다. 일부 근로자들은 마치 도살장과 같았다고 전해 주었다』
이날부터 양신부는 범국인적 연대가 필요하다고 판단, 국민운동분부에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근로자들의 지나친 행동의 자제를 촉구하는 등 분규중재 외에 복합적인 활동을 펼쳐 나갔다.
양신부는 외부세력중 군수ㆍ노동부 관계자, 경찰관계자 등이 장례위원들을 중재한다고 나서며 사건을 축소하려해 근로자들이 더욱 강경자세로 나서게 됐다며 보도와는 달리 재야측이 직접 개입보다 근로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
26일 새벽 분규타결소식을 듣고 현장을 떠난 양신부는 충무까지 5시간30분을 걸어나오며 기도를 올렸다.『당신의 일이오니 당신 뜻대로 하소서. 그리고 그토록 순수하고 자신들의 삶에 희망을 갖고 있는 저 모든 근로자들을 보호하소서』
-이번 일을 통해 받은 가장 큰 느낌은… .
『교회가 근로자들의 편에서서 사실을 전하고 근로자와 더불어 있어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물론 기업측의 입장도 충분히 살려야 할 것이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교회가 드러나지 않지만 근로자들을 위해 사목하고 있었는데 그 역할은 근로자들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앞으로 교회는 이와 같이 노사 쌍방의 신뢰를 증진시키고 인간성이 파괴되지 않도록 노사간 만남의 자리, 대화의 자리를 제공해야 할것이다』
양신부는 일부 언론의 선별적 보도에 의해 자신의 의도가 왜곡된 점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좋은 피정을 갖게 됐음을 부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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