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와 하느님의 섭리
1,이제 우리는 크리스찬 신앙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으며 믿는 이들의 마음속 한가운데 자리집고 있는 주제를 다루고자한다. 그것은 「하느님의 섭리」라는 주제다. 창조주로서의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신앙과 유기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교리를 한다는것은 지혜로우시고 전능하신 아버지로서의 하느님께서 역사속에 현존하시고 활동하시어 모든 피조물, 특히 당신의 모상인 인간이 하느님안에 있는 영원한 삶이라는 목표를 향하는 여정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시는 면을 살펴 보는 것이다.
한편으로 인간은 이 섭리하시는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그런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게 된다. 그렇지만 다른편으로 인간은 자기 생명의 주인이시며 구세주로서의 하느님께 자신을 내던지기를 두려워한다. 이런 사람은 사물들로해서 복잡해져 창조주를 잊어버리거나 고통때문에 아버지로서의 하느님에 대해 회의를 품고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섭리를 이야기할 때 심오한 삶의 문제들이 개입된다. 하느님의 전능과 인간의 자유와의 자화문제, 우리의 미래운명, 무죄한 이들의 고통과 세상의 악을 두고 그분의 무한한 지혜와 선하심을 어떻게 해석하고 인식해야 하는가 ? 이 모든것이 숙명인가 ? 아니면 우리의 최종완성을 위해 『힘차고 부드러운 손길로』이끄시는 분, 하느님이라 부르는 섭리가 준재하는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2,여기 희망과 절망의 위기에 우리가 희망을 가져도 좋을 근거를 든든히 해주는 하느님의 말씀이 있다. 하느님은 여기 계신다. 그분은 「엠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다. 우리는 시간속에 있는 교회의 역사 전체가 하느님 현존의 징표들을 끊임없이, 열정적으로 찾고 검토하고 제시하려는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하느님은 보신다, 하느님은 아신다, 하느님은 원하고 계신다, 하느님의 현존안에서 산다,그분의 뜻이 이루어지이다,하느님은 삐뚤삐뚤한 줄에 똑바로 쓰신다… 등은 「하느님의 섭리」를 말하는 것이다.
교회는 하느님의 섭리를 알리고 전한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그런분으로 계시하셨기 때문이다. 성서는 전체로 볼때 하느님의 섭리가, 기록된 최고의 문헌이다. 구원의 진리영역안에서 항상 새롭게, 그리고 새로운 용어로 섭리에 대해 자문하는 인간의 동반자가 되려는 교회의 노력이 성전에 나타나있다. 따라서 성서와 성전을 따라 하느님의 섭리를 다루게 된다.
보존은 계속적인 창조
3, 하느님께서는 당신 밖에 존재하기 시작하는 모든 것을 창조하심으로써 무(無)로부터 존재에로 부르셨다. 하느님의 창조행위는 여기서 끝나지않는다. 무에서 나온 것은 창조주에 의해 존재하도록 보존되지않고 그대로 둔다면 무로 돌아갈 것이다. 사실 하느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신 후 그것을 존재하도록 지속시킴으로써 계속 창조하시는 것이다. 보존은 계속적인 창조다.
우리는 가장 일반적인 의미로 「하느님의 섭리」가 특히 「보존」으로, 즉 무에서 존재를 가진 모든것을 존재토록 지속시키는데서 표현된다고 말 할 수 있다. 그것은 창조 전체속에 창조주로서의 지속적이고 중단없는 하느님의 현존을 뜻한다.
제1차 바티깐 공의회는 섭리를 가톨릭적 믿음이라고 신앙의 기본진리로 선포했다.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은 확실히 인간실존의 기본개념과, 인간 삶의 의미와 엄밀히 결합되어 있다. 인간은 자기가 맹목적인 운명에 내맡겨져 있지 않고 자기의 창조주요 아버지이신 「어떤분」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때 자신의 실존을 본질적으로 달리 대할 수 있다.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신앙은 여러형태의 숙명론적 사상에서 인간을 해방시켜준다. 2차바티깐 공의회도 하느님의 섭리에 대해 여러차례 언급한다. 공의회는 『만민을 아버지같이 돌보시는 하느님』특히 『인류를 돌보시는』하느님이라고 말한다.
섭리는 초월적 지혜
4,하느님은 오늘 세상에 현존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현존하는가 하는 끊임없는 질문에 크리스찬 신앙은 『하느님은 창조하신 모든 것을 당신 섭리로 지켜주시고 다스리신다』고 명료하고 확고하게 답한다.
신ㆍ구약에 풍부하게 표현돼 있는 계시에 따르면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개념에 두가지 요소가 있다. 보살핀다는 요소와 다스린다는 요소다. 창조주로서의 하느님은 모든 피조물에 대해 최고 지배권을 가진다.
창조주의 지배권은 아버지의 보살핌으로 표현된다.이 유비속에는 어떤 의미로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진리의 핵심이 담겨있다. 같은 진리를 성서는 『야훼는 나의 목자,아쉬울 것 없노라』고 표현한다.
얼마나 기막한 표상인가! 사실 하느님의 섭리는 세계를 다스리는데 있어 예지와 사랑의 영원한 계획을 이루어나가는 『염려로 가득한 지배』능력과 선으로 가득한 『보살피는 다스림』이다.
세상이 「혼돈」이 아니라 질서있는 「우주」이도록 보장하는 것은 창조주의 초월적 지혜로서의 섭리다. 창조된 세계가 자율성을 갖도록 보장하는 것도 창조주의 초월적 지혜에 관계된다.
[교황님이 가르치는 교리 - 나자렛 예수] 94. 하느님의 지혜로운 섭리
발행일1987-09-06 [제1570호,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