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기쁘지 뭐 그나마 나의 일생에 대해 한마디하고 싶은 말을 한 것이 기쁘다는 생각이 들어』
횟수로 36회, 2백자 원고지로 3백 20매에 이르는「노사제 회고」를 끝낸 구천우(92) 신부는 이런 기회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이 기쁘다고 소박한 소감을 밝혔다.
안양본당을 끝으로 1974년 일선에서 물러난 구천우 신부는 한국에서 최고령 사제이면서도 아직도 하루에 담배를 1갑씩 꼭 피우고 있고 식사 때는 반주를 거르지 않을 정도로 건강은 좋은 편이다.
오전 7시에 기상하면 방안에 차려진 제대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매일 식후 30분씩 현재 살고 있는 개포동 주공아파트 뒷산을 산책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과이다.
은퇴 후의 생활에 대해『완벽하다』는 한마디로 잘라 말하는 구천우 신부는『교구에서 보살펴주기 때문에 생활의 어려움은 없고 그저 평소 그대로 기도하면서 이제는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러나 때때로『허전함이 찾아 든다』는 말로 은퇴생활의 일면을 털어놓는 구천우 신부는 요즘 후배 사제들이 선배 사제들을 잘 찾지 않은 풍조에 대해『말하자면 신부들끼리 그게 좀 부족해.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시대가 변했고 한국사회가 변했고 신부들이 눈코 틀 새 없이 바쁘니까…』라고 말끝을 흐렸다.
노사제는 갑자기 엄습해오곤 하는 허전함을 신부들의 탓이라기보다는「어쩔 수없는 시대의 변화」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급격하게 성장한 한국교회의 향배를 묻는 질문에 이르자 노사제는 교회의 앞날을 짊어지고 나갈 후배신부들의 책임을 큰 목소리로 강조했다.
『한국교회의 모습은 그런대로 만족할 만 해 그러나 사회자체가 너무도 급격히 변화했기 때문에 교회가 미처 그 변화를 따라갈 힘을 키우지못한 느낌도 들곤 하지. 앞으로의 진로는 확언을 못하겠으나「신부사회」에 달린 것만은 분명하지』『사제들이 지금보다 더 마음을 가라앉히고 참된 그리스도의 신앙을 삶으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노사제의 목소리는 노령 때문에 간간히 쇳소리로 잦아들기도 했지만 그 뜻만은 올곧은 삶을 살아온 이만이 할 수 있는「준엄한 꾸짖음」을 바닥에 담고 있는듯했다.
교회의 미래를 위한 또 하나의 당부는 평신도의 역할.
구천우 신부는『나름대로 역할을 잘 찾아하는 신자들이 많이 있지만 시대의 변화 때문인지 신앙의 뿌리가 깊지 않은 신자들도 많이 있는 것 같다』며『옛사람들은 마음이 순박해서인지 신앙이 굳세 있고 한번 박히면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고 옛날 신자들의 신앙심을 설명했다.
26년에 서품, 62년을 꾸려온 사제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제8대 조선 교구장을 지낸 빠리외 방전교회 민덕효(뮈텔) 주교라고.
외국사람 이면서도 한국교회를 아꼈고 군란시기에 생명을 내놓고 한국 땅에 들어온 민 주교를 정말 진실한 사제요 뛰어난 행정가로 평가한다.』는 구 신부는『젊은 인재를 양성하기위한 대학교 설립을 유언 아닌 유언으로 요청했던 안중근 의사의 소망을 풀어주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민주교의 모습이 특히 인상에 남는다.』고 회고했다.
자신이 태어난 그리운 고향이자 청년시절에 사제로서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던 북녘교회.
최근 장익 신부가 북한의 새 성전에서 미사를 봉헌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놀라운 한편 반갑기도 했다』는 구천우 신부는 그러나 분단의 아픔과 공산당의 실상을 직접 접해본 때문인지『통일은 그리 쉽지 않은 문제』라고 우레를 표했다.
산골짜기의 촌부인지 사제인지조차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소박한 차림을 하고 다녀「누런 빛깔의 잠바」가 마치 트레이드마크처럼 박힌 구천우 신부.
그러나 신앙이 무엇이냐는 질문에『그것은 죽음』이라고 주저 없이 밝히는 노사제는『다시 태어나시면 서제의 길을 가시겠느냐』고 묻자『동료 윤형중 신부가 죽기 전에 찾아와 우리가 신부가 된 것은「참 복된 일」이라고 했던 말을 두고두고 기억한다.』며 노안가득 소박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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