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으로서의 인간은 자아실현 지향
5. 하느님의 모상과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은 창조주께서 『그 자체를 위하여 원하신』(사목헌장24) 유일한 가시적 피조물입니다. 하느님의 초월적 지혜와 힘에 예속된 세계속에서 인간은 그 최종목적을 하느님안에 두고있기는 하지만 그자체로서 하나의 목적이기도 한 존재입니다. 한 사람의 인격으로서 인간은 자기 자신의 목적(자기목적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힘으로 그는 자아실현을 지향합니다. 의무이기도한 선물을 받은 인간은 하느님 섭리의 신비에 싸여있읍니다.
『주님께서 사람을 훍으로 만드시고…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릴 권한을 주셨다. …사람에게 입과 혀와 눈과 귀를 주셨고 마음을 주시어 생각하게 하셨다. 또한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지식과 분별력을 풍성하게 주시고 선과 악을 분간할 수 있게 해주셨다. 그리고 당신의 위대한 업적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그들의 마음속에 눈을 주셨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지식을 주시고 생명의 율법을 유산으로 주셨다…』(집회서17, 1~2: 6~8: 11).
하느님의 섭리는 인간의 여정동반
6. 그러한「실존적」장비를 하사받아 인간은 세상속에서 자신의 여정을 출발한다고 말할수있읍니다. 그는 자기자신의 역사를 쓰기 시작합니다. 하느님의 섭리는 인간의 여정을 통해 줄곧 인간을 동반합니다. 다시 집회서를 읽어봅니다.『사람의 행동은 언제나 주님앞에 드러나 있어서 그분의 눈을 속일수가없다. …그들이 한 모든 일은 백일하에 그분께 드러나고 주님의 눈길은 그들의 행실을 언제나 지켜보신다』(집회서17, 13: 15).
시편저자는 이 똑같은 진리를 감동스럽게 표현합니다.『새벽의 날개 붙잡고 동녘에가도 바다끝 서쪽으로가서 자리를 잡아보아도 거기에서도 당신손은 나를 인도하시고 그오른손이 나를 꼭 붙드십니다.…당신은 이몸을 속속들이 다아십니다』(138/139, 9~10: 14).
인류력사는 하느님의 「눈길」아래 전개돼
7. 하느님의 섭리는 인간역사에, 인간사상과 자유의 역사에, 마음과 양심의 역사에 현존합니다. 인간안에서 그리고 인간과 더불어 섭리의 활동은 자립존재의 최고 초월성에 있어서는 변함이없고 불변적이면서도 그것이 인간본성 발전의 리듬을 따르고 그법칙에 적응한다는 뜻에서「역사적」차원을 얻게됩니다. 섭리는 인류의 역사, 개인과 공동체 역사속에 존재하는 영원한「현존」입니다. 국가들과 전 인류의 역사가 하느님의「눈길」아래, 그리고 그분의 전능하신 활동아래 전개됩니다. 창조된 모든 것이 섭리에 의해『보살핌을 받고』다스려진다면 아버지다운 염려로 가득한 하느님의 권위는 이성적이고 자유로운 존재들에 대해 최대의 자유존중을 뜻합니다. 그자유는 창조된 세계속에서 하느님의 존재 자체, 하느님의 자유자체에대한 모상과 닮음의 표현입니다.
자유존중위해 죄까지 허용
8. 창조된 자유를 존중하는것은 너무나 본질적이어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섭리안에서 인간의 죄(와 천사의 죄)를 허용하기까지 합니다. 모든 피조물가운데 출중하지만 항상 한계있고 불완전한 이성적 피조물은 자신의 자유를 악용할 수 있읍니다. 그는 그 자유를 하느님을 거슬러, 창조주를 거슬러 사용할수 있읍니다. 그것은 인간 마음에 괴로운 주제인데 집회서는 그에 대해 대단히 깊이 있는 말씀으로 생각했읍니다.『한처음에 주님께서 인간을 만드셨을때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도록하셨다. 네가 마음만 먹으면 계명을 지킬수 있으며 주님께 충실하고 않고는 너에게 달려있다. 주님께서는 네앞에 불과 물을 놓아주셨으니 손을 뻗쳐 네 마음대로 택하여라. 사람앞에는 생명과 죽음이 놓여있다. 어느쪽이든 원하는대로 받을것이다. 주님께서는 위대한 지혜와 전능하신 힘을 가지시고 모든것을 보고계신다. 주님께서는 인간에게 악인이 되라고 명령하신적이 없고 또, 죄를 범하라고 허락하신적도 없다』(집회서 15, 14~20).
자유는 사랑위해 존재
9.『뉘 있어 제 허물을 다알리이까?』라고 시편 저자는 묻습니다(18/19, 13참조). 하지만 이러한 미증유의 인간의 거부(죄를 통한)에까지도 하느님의 섭리는 그빛을 비춰 우리가 그것을 범하지 않는 것을 배우도록 해줍니다. 인간이 이성적이고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된 세계속에서 죄는 가능했을뿐 아니라『아주 시초부터』실제적 사실로 나타났읍니다.
죄는 하느님께 대한 근본적 반대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에 의해서 결정적으로 그리고 절대적으로 원해진 바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분은 자유로운 존재들을 창조함으로써, 인간을 창조함으로써 죄를 허용하셨읍니다. 그분은 창조된 자유를 납용한 결과인 죄를 허용하셨읍니다. 계시를 통해서 알고 그 결과로 경험한 이사실로부터 우리는 하느님의 초월적 지혜의 견지에서 전체 피조물의 목적에 비춰 죄의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배제시킴으로써 세상에서 자유를 뺏기보다 그납용을 무릅쓰면서라도 창조된 세상속에 자유가 있는것이 더중요하다는것을 이끌어낼수 있읍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죄를 허용하셨지만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 다른편으로 아버지로서의 사랑하는 염려와 더불어 그분은 영원으로부터 배상의 방법, 구속의 방법, 의회의 방법과 사랑을 통한 구원의 방법을 미리 내다보셨읍니다. 자유는 실상 사랑을 위해서 있읍니다. 자유없이 사랑은 있을수 없읍니다. 선과 악 사이의 갈등, 죄와 구원 사이의 갈등속에서 사랑은 마지막 결정적인 말을 쥐고있읍니다.
[교황님이 가르치는 교리 - 나자렛 예수] 83. 섭리와 인간의 자유 (하)
발행일1987-05-31 [제1557호,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