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핌과 다스림
1. 되살아나는 의문에 때로는 의혹을 나타내는 질문-하느님은 오늘 세상에 현존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현존하는지-에 크리스찬 신앙은 『하느님은 창조하신 모든 것을 당신 섭리로 지켜주시고 다스리신다』고 명료하고 확고한 확신으로 답합니다. 이 간결한 말로 1차 바티깐 공의회는 하느님의 섭리에 대해 계시된 교의를 정식화했읍니다. 신ㆍ구약에 풍부하게 표현돼 있는 계시에 따르면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개념에 나오는 두 요소가 있읍니다. 보살핀다(custodisce)는 요소와 동시에 지배(guverna)의 요소입니다. 이 두 요소들은 서로 침투됩니다. 창조주로서의 하느님은 지상 왕자들의 주권과 유비로 말하듯이 모든 피조물에 대해 최고 지배권 (dominum altum)을 가집니다. 사실 창조된 모든 것은 창조됐다는 바로 그 사실로 그 창조주 하느님께 속하며 그결과 그분께 종속됩니다. 어떤 의미로 모든 존재는 「자신에게」보다「하느님에게」더 속합니다. 그는 먼저「하느님의 것」이고 그 다음에 「그 자신의 것」입니다.
이것은 지상의 지배자의 신하들간의 관계에 대한 모든 유비를 무한히 능가하는 근본적이고 전적인 방식으로 그런 것입니다.
아버지다운 보살핌
2. 창조주의 지배권은 아버지의 보살핌(custodisce)으로 표현됩니다. 이 유비속에는 어떤 의미로 바로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진리의 핵심이 담겨 있읍니다. 같은 진리를 표현하기위해서 성서는 비교를 사용합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시편22/23.1) 얼마나 기막힌 표상입니까! 만일 고대 신경들과 초세기 그리스도교 성전이 희랍어(panto-Krator)에 해당하는「萬有를 잡고 계신분」이라는 말로 섭리에 대한 진리를 표현했다면 이 개념은 계시된 진리가 그토록 생생하게 우리에게 전해주는 바와같이 성서의「목자」라는 말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합니다. 사실 하느님의 섭리는 창조된 세계와 특히『인간사회의 길들』 (종교자유에 관한 선언3참조)을 다스리는데 있어 예지와 사랑의 영원한 계획을 이루어나가는『염려로 가득한 지배』입니다. 그것은 능력으로 그리고 동시에 선함으로 가득한 『보살피는 지배』입니다. 1차 바티깐 공의회가 인용한 지혜서 본문에 따르면『지혜는 세상끝에서 끝까지 힘차게(fortiter) 펼쳐지며 모든 것을 훌륭하게(suaviter) 다스린다』(지혜서8.1) 즉 그것은 다른 성서의 비교에 따르면 창조전체를 포용하고, 지탱하고, 보살피고 어떤의미로 길러줍니다.
성서는 하느님 섭리 기려
3. 욥서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여보시오, 하느님께서 하시는일은 아무도 따를 수 없소. 어떤 스승이 그 곁에라도 설 수 있겠소?... 물을 끌어 올리시어 안개로 만드시고 안개에서 다시 비를 방울방울 걸러내시며 구름으로 싸두셨다가 터뜨리시어 땅에 소나기를 쏟으신다오. 이렇듯이 사람들을 보살피시고 푸짐하게 배불려 주신다오』(욥 36.2227~28.31)
『검은 구름에서 우박이 쏟아질때 그 구름에선 번갯불이 번쩍이며 그의 명령을 따라 빙글빙글 돌다가 사람사는 땅위 어디에서든지 그의 명령을 이루고야 만다오』 (욥37.11~12).
마찬가지로 집회서에서도 『지극히 높으신분의 분부로 눈이 내리고 번갯불이 심판을 알린다』(집회서43.13)고 표현했다.
시편 저자는『당신의 명성, 그 찬란함, 이룩하신 놀라운일』을 기립니다. 야훼는 『모든 것을 인자하게 보살피시고 그 부드러운 사랑은 모든 피조물에 미친다』고 외칩니다. 『모든 눈들이 당신만 쳐다보고 기다립니다. 철을 따라 양식을 주실 분 당신밖에 없사옵니다. 당신께서 손만 벌리시면 살아있는 모든 것 원대로 배부릅니다』 (시편144/145:5,6,7,9,15~16).
『당신께서 짐승들이 먹을 풀을 기르시고 사람이 농사지어 땅에서 양식을 얻도록 곡식을 또한 가꾸셨읍니다.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하는 포도주도 내시고 얼굴에 윤기내는 기름도 내시고 힘을 돋구어주는 양식도 내셨읍니다』 (시편103/104ㆍ14~15)
섭리는 우주의 질서 보장
4. 성서는 많은 구절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세계에 대한 최고 권한으로 찬미합니다. 모든 피조물과 특히 인간에대한 보살핌으로 꽉차서 그것은 창조된 원인들의 효과적인 힘을 사용합니다. 바로 이속에 창조적 지혜가 나타납니다.
그지혜는 인간예지의 본질적 성질과의 유비에 의해 최고로 멀리 보는것이라 말할수 있읍니다. 사실 창조된 모든 것을 무한히 초월하시는 하느님은 동시에 대우주와 소우주에서 관찰될수있는 저 놀라운 질서를 세상에 제시하도록 보장합니다. 세상이 「혼돈」이 아니라 질서있는「우주」이도록 보장하는것은 창조주의 초월적 지혜로서의 섭리입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잘재고, 헤아리고, 달아서 처리하셨다』 (지혜서11.20)
피조물의 자율성속에 지혜로운 섭리 표현돼
5. 비록 성서의 표현방식은 사물의 지배를 직접적으로 하느님께 관련시키고 있지만「제1원인」으로서의 하느님의 행위와 제2원인들로서의 피조물의 행위와의 차이는 상당히 분명합니다. 여기서 현대인의 마음을 대단히 차지하고 있는 문제, 피조물의 자율성에 관한 문제 따라서 인간이 이룬다고 생각하는 세계속의 성취인(成就因)의 역할에 관한 문제가 대두됩니다.
가톨릭 신앙에 따르면, 하느님이「섭리」로서 세상에 현존하시고 동시에 2차 바티깐 공의회가 말하는「자율성」을 창조된 세계가 소유하도록 보장하는 것은 창조주의 초월적 지혜에 관계됩니다. 한편으로 사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존재하도록 지탱시킴으로써 그들의 현재모습이 있도록 하십니다. 『사실 만물은 창조되었다는 조건 자체로써 고유의 안정과 진리와 선을 내포하고 있으며 고유의 법칙과 질서를 지니고있다』(사목헌장36).
다른 편으로 하느님이 세상을 다스리는 방식 때문에 세상은 『하느님의 뜻에도 부합되는』 (상동) 참된 자율성의 처지에 있읍니다.
「하느님의 섭리」는 바로 하느님께 고유한 능력과 「부드러움」이 모두 드러나는 그러한 「피조물의 자율성」에 표현됩니다. 그 자율성 속에 초월적이고 우리에게는 항상 더 신비스러운 지혜로서의 창조주의 섭리가 모든 것을 포용한다 (『지혜는 끝에서 끝까지 펼쳐지며』)는것이 확인됩니다. 그것은 지혜서의 훌륭하게(suaviter)라는 말속에 암시될 수 있듯이 세상의 형성과 발전의 역동성에 내재적인, 제2원인들로서의 피조물의 역할을 다치지않으면서 힘차게(fortiter) 다스림과 창조하는 능력으로 모든 것 안에 실현됩니다.
[교황님이 가르치는 교리 - 나자렛 예수] 80. 섭리는 초월적 지혜 (상)
발행일1987-05-10 [제1554호,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