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 3위 성인의 영정을 제작하는 등 한국 교회발전에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긴 절두산 순교기념관장 박희봉(이시도로) 신부가 8월 10일 오전 5시 1년 6개월간의 투병 끝에 숙환인 췌장암으로 선종했다.
향년64세.
8월 11일 오전 10시 서울명동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 주례로 봉헌된 추모미사에는 김옥균주교ㆍ강우일 주교 1백 50여명의 교구사제단을 비롯 2천 5백명의 신자가 참석, 오열을 터뜨리며 한 몸을 오롯이 주님대전에 바친 고인의 넋을 위호하고 영원한 안식을 기원했다.
이날 미사 중 강론에서 김수환 추기경은『박 신부님은 우리순교성인에 대한 깊은 신심을 함양하고 정신을 보존하는데 전심전력을 기울였다』고 기억하면서『아직도 교회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큰 일꾼을 잃었다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고 애석해했다.
1924년 수원에서 출생한 박희봉 신부는 1950년 사제서품을 받은 후 수원왕림본당보좌로 사제생활을 출발, 근 40여년 동안 교회 각 방면에서 눈부신 활동을 펼쳐왔다.
가톨릭 중앙의료원 초대원장ㆍ가톨릭의대학장ㆍ가톨릭대학 부속 성모병원장을 역임, 오늘날 가톨릭 의료관련기관의 초석을 닦았으며「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한국천주교 200주년」때는 재정위원장을 맡아 정열을 쏟았다.
특히 한국순교성인들에 대해 애정을 기울여 1975년 헤화동본당 재임시 1백 3위 순교성인의 영정을 제작하기도 했는데 선견지명으로 제작된 이 영정은 8년 후 1백 3위 성인 시성식에 그대로 사용, 한국교회사에 오래기억에 남을「역사적 의미의 업적」으로 꼽히고 있다.
박 신부는 1983년 제6대 절두산 순교기념관 관장으로 부임, 67년 자신의 뜨거운 열성으로 이룩한 절두산 기념관을 제1의 성지로 변모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쏟아왔으며 건강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필생의업으로「1백 3위 성인 기념관」건립을 추진해왔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부드러웠던 성품으로 많은 신자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박 신부는 극심한 고통의 병상 속에서도 필생의 사업으로 여겼던 1백 3위 성인 기념관 건립걱정을 멈추지 않아 주위의 안타까움을 더해주었다.
병상의 고통을 인내하면서 속죄로 사제생활을 마감하고 싶다는 마지막 유언을 남긴 박희봉 신부, 그의 유해는 고별예식을 거쳐 용인 성직자묘지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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