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보존에서 하느님 섭리 드러나
1, 오늘 우리는 하느님의 섭리에대한 교리를 계속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밖에 존재하기 시작하는 모든것을 창조하심으로써 무(無)로부터 존재에로 부르셨읍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창조행위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무로부터 나오는것은 창조주에 의해 존재하도록 보존되지않고 그대로 둔다면 무로 돌아갈것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신후 그것을 존재하도록 지속시킴으로써 계속 창조하시는 것입니다
(Conservatio est continuacreatio)
2, 우리는 가장 일반적인 의미로 「하느님의 섭리」가 특히 이 「보존」으로, 즉 무에서 존재를 가진 모든것을 존재토록 지속시키는데서 표현된다고 말할 수 있읍니다. 이런 의미에서 「섭리」는 말하자면 창조사업을 그모든 풍요로움과 다양함대로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창조 전체 속에 창조주로서의 지속적이고 중단없는 하느님의 현존을 뜻합니다. 그것은 지속적으로 창조하는 현존이며 존재하는 모든것이 가장 깊은 뿌리에 지속적으로 도달하는 현존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거기서 존재와 행위의 제1원인으로서 작용합니다. 이 하느님의 현존 속에 동일한 창조 의지와 창조된 것을 보존하는 영원한 의지가 지속적으로 표현됩니다.
그것은 최고로 완전히 으뜸가는 의지인데 그것으로써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절대적으로 고유한 선성의 본성을 따라(bonum diffusivum sui), 창조의 첫순간처럼 무에 대립되는 것으로서 존재를 좋다고, 죽음에 대립하여 생명을 좋다고, 「어둠」에 반대되는 것으로서「빛」을 좋다고 계속해서 자신에게 선언하십니다. (요한1.4~5 참조) 한마디로 그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참됨과 선함과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의지입니다. 「섭리」의 신비속에는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참 좋았다』(창세기1, 25와 31)라는 창세기에 담긴 판단이 중단됨이 없이 그리고 취소됨이 없이 연장되어 있읍니다. 그것이 기본적이고 흔들릴 수 없는 창조사업의 긍정입니다.
성서 전체가 섭리 알려
3, 이 본질적 긍정은 우주의 모든 것에 내재적인 한계에서 나오는 어떤 악에 의해서도, 또는 인류역사에서 일어난 바와 같이, 원초의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참 좋았다』와 슬픈 대조를 이루면서 생겨난 어떤 죄악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섭리」는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 속에서, 하느님의 창조계획 속에서, 일단 인간이 저질렀고 하느님께서 허락하셨으나 원래 자리가 없었던 그 악이 결국에 가서는 사도께서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로마8.28)고 말씀하시듯이 선에 예속된다는 인정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다시 다루어야할 문제입니다.
4, 하느님이 섭리에 대한 진리는 계시 전체에 현존합니다. 창조에 대한 진리가 계시 전체에 스며있듯이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진리는 계시 전체에 스며있다고 말할 수 있읍니다. 이와 더불어 그것은 하느님께서 『여러번 여러가지 모양으로 예언자들을 시켜…이 마지막 시대에 와서는 당신의 아들을 시켜』(히브리1、1)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싶었던 모든 것의 첫째가는 기본적 참고점을 이룹니다. 그렇다면 게시가 그것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본문들과 성서가 간접적으로 증언하고 있는 본문에서 이 진리를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읍니다.
[교황님이 가르치는 교리 - 나자렛 예수] 78. 보존은 계속적인 창조 (상)
발행일1987-04-19 [제1551호,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