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문은 저주받은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6대 선조들은 직계ㆍ친족은 물론 처족까지 처형되거나 유배 되는가 뿔뿔이 헤어져 숨어살아야만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집과 전답을 버리게 됐지만 박해 후에도 죄인의 집안이라 손가락질당해 고향을 떠나는 통에 6대 선조 윤유일ㆍ윤유오형제 순교자 소유의 땅 수십 만평은 모두 없어지고 겨우 선영만 남았습니다.』
순교자가문 윤유일 일가의 가족묘지 3천여평을 지난 6월 28일 이천성지순교자 현양대회 때 수원교구장 김남수 주교에게 봉헌한 윤필용씨(71세ㆍ경기도 이천문 백사면 현방리73)는 한국천조교회 최초의 사제 주문모 신부를 영임해온 죄로 처형된 유일 순교자의 친동생 유오 순교자의 6대 직계 손으로서 순교자집안의 처참했던 상황을 전했다.
윤필용씨는 이천성지의 교회사적인 중요성을 인식하고는 9대째 내려오는 파평윤씨 가문 소유인 천군모가면어동 2리의 땅 3천여평을 봉헌하기위해 가문내 집안사람들을 설득, 승락을 받은이로서 성지의 땅문서를 지녔던 윤씨 가문의 대표자다.
윤필용씨는 『윤유일ㆍ유오 순교자의 후손 중에는 순교자만 해도 14명으로 파악되며 박해로 인해 6가구가 집과 전답을 버리고 숨어 다니지 않을 수 없었는데 순교자중 8명은 순교의 근거자료가 명확하다』고 밝히고 『이로 인해 후대로 내려오면서 묘를 파내 조상의 시신 12구를 화장해야 했으며 봉분을 못 세우고 평토장을 하기도 하는가 하면 족보를 아예 땅에 묻어 숨겨야만 했다』고 밝히며 선영이 성지로서 영광을 받기까지 4대째 내려오면서 패가망신하는 몰락과정을 설명했다.
『윤유일 순교자는 명문집안이 아니면 아예 엄두도 못냈던, 당시 유명한 명문집안의 대학자였던 권일신에게서 학문과 교리를 배운 분』이었다고 말하면서 윤유일 순교자는 재산과 명예와 지성을 두루 갖춘 이였다고 지적했다.
파평윤씨 가문의 실제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신앙이 주는 고통과 영광을 설명한 윤필용씨는 이천성지개발위원회(위원장:이천본당주임 배영무 신부)가 현재 이천성지주위의 땅을 매입하고 진입로를 만들어야 하는 등의 성지단장 사업이 재정부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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