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ㆍ1절을 맞아 또 다시 항일 독립 운동가들과 그 후손들에게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가운데 조용히 신앙 생활을 하면서 근검절약한 돈으로 장학기금도 내놓고 이 나라의 안정과 세계 평화를 취해 기도하고 있는 독립군 미망인이 있어 교회 내에 잔잔한 파문을 던지고 있다. 2천 5백명의 병력으로 일본군 5만명을 무찌를「청산리 전투」로 유명한 백야(白冶) 김좌진 장군의 미망인 나혜국(요한나ㆍ87세) 할머니가 바로 그 주인공.
지난해 10월 21일 삯바느질로 모은 2천만원을 김장군의 고향인 충남 홍성의 청소년들을 위한 장학기금으로 내놓아 매스컴에 오르내렸던 나할머니는 이에 앞서 강남 삼성동에 사두었던 억대의 땅 3백평을 군종 신부단에, 그리고 꽃동네에 1백 63평을 기증한 바도 있다. 또 동정녀로 살아오면서 나할머니에게 큰힘이 되준 여동생 여운(까타리나ㆍ86년 5월 작고)씨의 이름으로 81년 철원 군인성당 건립에 2천만원울 내놓기도 했다.
나할머니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은 서울 북아현동 삼익아파트 A동 302호의 12평짜리 낡은 아파트. 아들내외와 손자와 함께 화목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할머니는『우리야 이 정도면 충분히 먹고살지. 가게 세준 것도 나오고 연금도 나오고…』『전기ㆍ수도물 하나 아껴쓰는 일이 바로 애국하는 일이 아니겠어』주름진 얼굴에 조용히 미소 짓는다.
몇 해 전까지만해도 검정고무신을 신고 다닐 정도로 검소ㆍ절약정신이 몸에 밴 나할머니는 얼마든지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처지이지만 그런 생활은 오히려 부끄럽다며『독립군들이 나라를 찾고자 고생을 보람으로 알았던 것은 지금 우리의 희생이 천국을 바라보는 것과 같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함북 회령 출신인 나할머니는 일본의 침략으로 나라가 기울기 시작한 1908년 무역 중개상을 하는 부모를 따라 북간도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그녀의 아버지는 학교를 세우고 소방서를 만들어 40호가량의 동포들과 함께 살며 독립군에게 군자금도 대주었다. 그러나 독립군에게 군자금을 대준 사실이 새어나가 북만주로 다시 피해야만 했다. 가족들과 동포들을 이끌고 북만주에 온 그녀의 아버지는 이곳에서도 재산을 일궈 역시 독립투사들을 도왔다.
「청산리 전투」가 끝난 후 1922년, 그녀는 김장군을 만나 혼인을 했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22세. 김장군의 나이는35세. 김장군과 결혼할 때 고향의 부인이 사별한 줄 알았는데 생존해있는 것을 나중에 알아 실망도 컸다고.
8년이란 짧은 결혼생활동안 함께 있었던 날도 별로없이 불안과 초조 속에서 보내야만 했다는 나할머니는『그분은 체격도 크고 인상도 호랑이 상이어서 처음에는 무서웠는데 같이 지내고보니 그렇게 자상할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한밤중에 불쑥 찾아오는 동지들을 위해 언제나 솥안에 밥을 서너그릇 준비해놓고 동지들 편에 김장군의 소식을 간간히 듣고 남몰래 기뻐하기도 했다.
1930년 1월 26일 김좌진 장군이 고려 공산당원 박상실의 흉탄에 쓰러지고 1931년 만주 사변 후 그녀는 다섯살짜리 딸과 두 살 난 아들을 데리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러나 가진 것이 없어 먹고 살기위해 무슨 일이든지 해야했다. 나무껍질 벗기기, 남의 집 식모살이 등 생활의 어려움도 문제였지만 일본 경찰의 따가운 눈초리에 더욱 시달려야했다.
독립군과 무슨 내통이 있는지 경찰서에 불려가 심문당하기도 여러 번이고 집주인도 귀찮다며 나가달라는 통에 셋방도 수시로 옮겨야했다.
해방 후 김구 선생과 이범석 장군의 도움으로 생활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서울역 부근에서 근로자들에게 음식을 파는 지정식당이 꽤 잘 운영되었다. 그러나 곧 6ㆍ25가 터졌다. 이때 아들이 폐결핵으로 성모병원에 입원해 있었다.「북경」에서 학교다닐 때 이미 세례를 받은 여동생이『언제 죽을지 모르니 영혼구령을 해야 한다』는 말에 그녀는 명동성당에서 영세, 가톨릭에 입교했다.
지난해 장학금을 내놓은 것은『못 배워서 나라를 배앗겼다. 배워서 독립하고 부강하게 할 수 있다』는 남편의 뜻을 받들었던 것. 『바르고 곧게 사시며 모범을 보여주신 어머니가 지난해, 의지해오던 이모님이 돌아가신 후 기운이 없어진 것 같으나 더욱 열심히 기도 생활을하고 있다』고 며느리 송의자(데레사ㆍ54세)여사는 귀띔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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