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만의 외출이었다. 외출한 그날은 바로 지난 25일 성탄대축일.
긴긴 세월을 하루같이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창문을 통해 비치는 하늘 한조각과 집 몇 채만을 바라보아야 했던 임종욱 (아우구스띠노ㆍ29)씨의 동공은 빛났다.
『아! 눈이 부시다』란 감탄사로 시작된 임씨의 외출은 부산시 북구 덕천동에서 광안동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또수녀원까지 약 1시간동안 차창에 비치는 시내의 거리가 마치 꿈 세계ㆍ별세계임을 느끼게 했다.
가슴 윗부분을 제외한 온몸이 마비돼 고목같은 몸체를 지닌 임씨에겐 참으로 귀하고 화려했던 외출이었다.
지난 73년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 연탄가스를 마시고 옥상으로 맑은 공기를 쐬려 올라가다 계단에서 추락, 목뼈가 부러지고 몸체로 내려가는 신경을 다친 것이다. 몸체에서 시작되던 마비는 급기야 손가락에까지 왔다.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부위라곤 두팔과 오른쪽 손가락2개, 왼손가락 1개뿐.
이런 참담한 생활이 12년이나 계속되던 85년 초, 임씨의 창에 파랑새가 날아왔다.
전해주는 소식은 맹인용 점자책을 만들 봉사자를 구한다는 라디오의 광고. 임씨는 이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맹인복지협회 부산지회에 편지를 보냈다. 자신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뭔가 남을 위해 일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절박감 때문이었다. 임씨의 병상을 찾은 맹인복지협회원으로부터 점역(점자만드는 일)을 배운 임씨는 매일 10시간 이상씩 작업, 1년 반동안 1백 여권의 점자책을 만들어 냈다.
정상인처럼 손가락사이에 점필을 쥐는게 아니라, 두 손바닥 사이에 점필을 끼고 글자를 구성하는 점 하나 하나를 뚫어가는 이 노역은 보통사람이 한 장(쪽)만다는데 7~8분 걸리는 것을 임씨로선 1시간 가까이 걸려야 할 만큼 각고이다.
맹인들 마음의 양식이 될 책을 만들다가 자연히 접하게 된 책은 이해인 수녀(올리베따노 성베네딕또 수녀회)의 시집. 이 수녀의 방문도 받게 됐다.
이때는 이미 맹인복지협회 부산지회의 이사 이순옥(실비아ㆍ39세)씨의 권유로 천주교 서적을 점역하던 때였다.
이후 통신교리를 받게 된 임씨는 86년 11월 28일 집에서 영세를 했다.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임씨의 미사참례는 임씨의 대부 엄항희씨(부산 MBC 아나운서부 치장)의 노력으로 결실을 보게 됐다.
봉고 12인승을 비롯 들것 운반자들, 체온 조절하는 이, 말 벗 등 10여명 외에도 소변때문에 비뇨기과의사까지 동원돼야 했다.
미사 후 수녀들과의 격의없는 대화ㆍ따뜻한 환대로 인해 임씨는 『오히려 내가 수녀님들을 우리 집에 초대한 것 같이 마음 편했다』며 수녀원에서의 5시간을 생애 최대의 순간순간들이라고 감격해했다.
『그날 이후 내 마음에 하느님이 기둥처럼 굳게 박혀있는 것을 체험하고 있다』는 그에게서『영혼 하나를 구하기 위해 천 번이라도 죽겠다』는 대 데레사 성녀의 말을 떠올릴 즈음, 임씨는 다시 점역하는 일에 몰두해 갔다.
▲주소=부산시 북구 덕천2동 33의18 16통 5반 임금석 씨 댁(전화:(051) 333~3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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