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연은 대충 이러하다 어느 날 신자도 아닌 웬 영감님이 성당에 찾아와서는 다짜고짜 자기 손자가 죽어가니 교회예식대로 장례를 지내달라고 부탁을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그 영감님은 곡산읍에서 제일가는 갑부로 개신교예배당을 짓는 데 거액을 희사할 정도로 열렬한 개신교 광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상스럽게도 집안에 「가슴앓이 병」이 끊기지 않아 큰아들이 해주요양원에서 붉은 피를 한대야나 토하고 나서 죽었고 지금은 그 손자까지 폐병에 걸려 오늘내일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애절한 사연이었다.
그 영감님은 『폐병이 도는 집안이라는 소문이 동네에 퍼지자마자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예수쟁이들」이 그만 야속하게도 딱 발길을 끊고 말았다』고 전하면서 『손자가 죽어가는 데도 뒷치닥거리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기가 막힌 사정을 호소해왔다.
영감님과 함께 가서 손자에게 영세를 주고 나서 공소회장들에게 급히 모이라는 전갈을 보냈다. 영감님 댁의 딱한 사정을 죽 써고는 이런 연유로 화려하게 장례를 지내야하니 가능한한 사람들을 많이 모아달라고 덧붙였다. 한 공소에서 5~6명씩 30명이 넘는 신자들이 장례식에 참가했다. 관 바로 뒤로는 가족들이 섰고 뒤로는 30명 가까운 신자들이 행렬을 지어 따라가는데 집에서 장지까지 낭랑한 목청으로 연도를 바치면서 행렬을 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굉장했던지 다음날 곡산읍의 「신문」은 「천주교 예식이 훌륭했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있는 듯 없는 듯 조재가 미미했던 가톨릭은 이 장례식을 계기로 곡산읍 전체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얼마 후에는 그 영감님의 시집간 큰딸이 또 다시 폐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다기에 신자들은 손자장례식 때와 똑같이 정성스럽게 그 딸을 돌보았다. 이미 12단을 다 외우고 있는 예비신자라 영세를 시키고는 성대하게 장례식까지 치러주었다.
2번의 장례식을 거치면서 곡산읍내에는 천주교가 「옳고 훌륭한 일」을 하는 곳이라는 평판이 자자해져 본격적인 전교활동을 펼치기에 적합한 분위기가 조성돼갔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전교로는 곡산의 명물인 「중석광」 근처 보통학교에서 성무집행 했던 일을 잊을 수 없다. 당시 그 학교교장으로 재직 중이던 한신자의 요청으로 이뤄진 일이었는데 이 신자는 당시 내가 영세시킨 곡산읍내 보통학교 6명의 교사 중 한사람이었다. 이 신자가 곡산보통학교 분교장으로 발령을 받고 가르치면서 내게 공소를 설립해달라는 요청을 했던 것이다. 당시 곡산의 중석광은 규모가 대단해서 노동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급한 대로 보통학교에서라도 성무를 집행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볼 때도 아마 보통학교실에서 성무를 집행한 신부는 나밖에 없을 것 같다.
폐병 영감님 댁의 장례식 때문인지 우리천주교의 교세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고 이에 따라 기존의 장로교교세가 부진해지고 말았다. 이것 때문이었는지 어느 날은 장로교회 목사가 내게 찾아왔다. 나의 코를 납짝하게 눌러 다시 교세를 펼칠 생각이었는지 그 목사는 이런 저런 말로 시비를 걸어왔다. 나는 당시 일본 가톨릭신문에 실려 있던 천주님의 계명인 『믿음ㆍ희망ㆍ사랑 중 신교에는 희망밖에 없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목사의 말을 이용해 목사의 질문에 냅따 답사를 했다. 거기에 덧붙여 개신교측의 폐단을 지적하며 바로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원뜻을 욕되게 하는 행위라고 질타를 하자 그 목사는 아무 말도 못하고 쫓겨나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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