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안의 처녀로 이역만리 이국땅에 와서 4반세기를 가난하고 불우한 어린이를 돌보며 주님의 사랑을 전파한 가톨릭 소화 유아원 원장 독일인 옥잉애(잉게엘레른감프:Inge Ellerm Kampㆍ56)여사.
지난 4월 12일은 그녀에게 있어 남다른 감회가 있는 날이었다. 그녀가 교적을 두고 있는 대구소화본당(주임ㆍ이성우 신부)이 25년 동안 소화유아원을 운영하며 영세민의 자녀들을 돌보아온 옥 여사를 위해 조촐한 자리를 마련했던 것.
미사ㆍ축하식ㆍ축하연으로 이어진 이날 행사에는 교구장 이문희대주교를 비롯, 가톨릭병원원장 박병원 신부 등 신자 3백여명이 참석하여 옥여사의 노고를 치하했다.
축하식에는 이문희 대주교의 감사패 전달 및 본당신자들이 준비한 꽃다발과 선물증정이 있었는데 이날 연한 살구 빛 한복차림의 옥 여사는 인사말을 통해『모든 사람들이 한 형제라는 것을 오늘 저녁처럼 강하게 느껴 본적 이 없다』며『어려울 때 도와준 친구들과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한국에서 25년을 맞은 소감을 밝혔다.
1932년 독일 리드링겐에서 태어난 옥잉애 여사는 함부르크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뒤 프라이부르그 대학의 보육학과를 졸업하고 유치원교사로 재직하던 중 우연히 신문에서 「한국의 어린이들이 당신의 도움을 원하고 있다」는 편지를 읽고 한국에 올 것을 결심하게 됐다. 평소 하느님이 자신을 필요로 할 때는 언제든지 달려가겠다는 뜻을 품고 있던 그녀에게 이 편지는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1963년 대구에 온 그녀는 2년 후 지금의 대명시장 안에 가장 어려운 가정의 자녀 30명을 택해 소화보유원을 개원했다. 가난한 맞벌이부부의 자녀들이 제대로 돌봐지지 않는 것을 보고 그 아이들을 바르게 키우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 느꼈던 것. 이 유아원의 소화본당을 싹틔운 요람이기도하다.
유아원을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경제적인 압박이었다. 운영이 어려울 때는 고향친구들의 도움이 그녀에게 큰 힘이 됐다.
자신이 아이들을 돌봄으로써 그 가정이 안정되고 평화로와지는 것을 봤을 때 힘든 가운데도 보람을 느꼈다고 말하는 옥 여사는『좀 더 훌륭한 유아원을 만들어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우고 싶다』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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