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 이들은 못배운 이들의 한을 알지 못합니다. 자식에게는 물론 남편에게 조차 자신이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숨긴 채 살아가는 이들의 가슴은 아픔으로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지요』
배우지 못한 이들에게 배움의 문을 활짝 열어준 한국 여성생활연구원 원장 정찬남(모니까ㆍ43ㆍ서울 봉천동본당) 씨.
한글 교육의 파수꾼으로 문맹자들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친구로 12녀의 세월을 지켜온 정씨는 UN이 제정한「세계 문맹자의 해」인 올해의 감회가 새롭다.
정씨는 78년 봉천동 산동네에서 한국여성생활연구원을 개원, 야간 중ㆍ고등학교과정은 물론 한글조차 해독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초등과정을 개설, 문맹자 퇴치에 온 정열을 바쳐왔다.
20~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들이 늦배움의 자세는 진지하기만 하다.
『한글을 배우러 오는 이들은 40~50대가 가장 많아요. 여성이었기 때문에, 또 가난했기 때문에 못배운 이들입니다. 이들은 일제 말기와 해방 그리고 6ㆍ25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근대사속에서의 희생양이라고도 볼 수 있지요. 한마디로 억울한 세대로 표현할 수 있어요』
읽을 수는 있어도 쓰지못하는 이, 받침없는 글자만 읽을 수 있는 사람, 기역니은도 모르는 사람 등 다양하지만 대부분 9개월 정도 공부하고 나면 모든 글자를 다 쓸 수 있게된다.
원예학을 전공한 정씨가 교육학으로 전공을 바꾼 것도 이들의 아픔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기 위해서였다.
『내가 이들보다 더 가진 것이라고는 조금 더 배웠다는 것 뿐입니다. 내가 가진것을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일을 시작했어요』
그러나 막상 여성생활연구원을 개원, 안내문을 들렸지만 찾아오는 학생은 한사람도 없었다. 많은 문맹자들이 자신이 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숨기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권할 수 없고 문맹자 자신은 안내문을 읽을 수 없으니 소용이 없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처음 연구원을 찾은 이들은 33명에 불과했다. 배우는 학생의 열기는 대단했고 점차 연구원도 알려져 찾아오는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없어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동안 3천여명의 여성들이 한글을 깨쳐「앎」에 대한 새 빛을 얻었으며 이들은 또 어디에서 살아도 기쁘게 살아갈 것이다.
처음에는 보람과 기쁨이 컸지만 이제는 사명감이 더 크다고 말하는 정씨는 2천년대까지 쉬지않고 뛰어야 우리나라에 더 이상 문맹자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정씨는 생물학,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지만 대학강단에 서는 것보다 연구원 일을 더 소중히 한다.
현재 인하대에서 시간강사로 재직 중인 정씨에게 한국 여성생활연구원은 사회교육의 현장이다. 또 이같은 사회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도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독신인 정씨는 문맹퇴치와 여성교육에 전 생애를 걸고 있다. 보다 효과적인 한글교육을 위해 국민학교 교과서를 토대로 별도의 교재를 만들었고「엄마」로서 꼭 알아야할 건강ㆍ영양ㆍ스포츠ㆍ음악 등도 교과과정에 포함시켰다.
『많은 엄마들이 국어만 배우면 된다고 생각해요. 산수를 조금만 가르쳐도 어렵다면서 배울 생각을 안해요. 읽고 쓰는 것이 된 후에야 수기념, 쉬운 한자를 가르쳐 생활하기에 어려움이 없게 합니다』
정씨는 이렇게 만학도들을 가르치는 고충을 털어놓는다.
한글교육과 더불어 주부대학, 여성교실, 신부대학, 봉사자교육 등을 실시, 여성들의 자기계발을 주도하고 있는 정씨는 국일 할머니 쉼터도 마련해 외로운 할머니에게도 봉사하고있다. 현재 할머니가 이용하고 있다.
※연락처=서울 관악구 봉천2동 41~200번 전화 884~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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