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3중고(三重苦)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한국판 헬렌켈러」같이 의지의 삶을 개척해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 주인공은 헬레켈러와 똑같은 3중장애를 지닌 신영식 (토마스아퀴나스ㆍ28)씨와 자신도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설리번 선생보다 더한 열정과 끈기로 신영식씨를 교육해온 정지훈(예로니모)교사.
작년 8월 국내 유일의 맹중복 장애자 성인 재활기관인 「라파엘의 집」(서울 도림동 소재)에서 교사와 원생으로 첫 만남을 가진 이들은 그간 온통 막혀버린 의사통로를 「손바닥 지화(指話)」로 대신하며 점자교육을 진행, 현재 신영식씨는 기적과 같이 점자의 자모체계를 습득하는데 성공했다.
정상인들에게는 이제 겨우 국민학교 1학년생이 한글의 모음ㆍ자음을 익힌 것과 같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현재까지 국내에서는 중복장애자를 대상으로한 체계적인 자료발간이 거의 없다는 점, 더우기 가르치는 교사 자신도 물체의 윤곽만을 구별할 정도의 기각 장애자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신영식씨의 점자습득은 앞으로 농맹인 교육의 가능성을 시험해본 시금석이 될 수도 있다.
정지훈 교사는 농맹자 특유의 폐쇄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성격을 가진 신영식씨와의 인간적 유대형성과 교육을 위한 자료구입등을 가장 어려운 점으로 꼽았다.
안동이 고향으로 어려서 부모를 여윈 신영식씨는 원래 농아였다가 자신의 기구한 삶을 비관한 나머지 목숨을 끊으려고 트럭에 뛰어든 후 그후유증으로 실명을 했기때문에 일반 농맹자보다 더 폐쇄적이고 일종의 자기 피해의식도 심하게 갖고 있었던 것.
대구대학교 특수교육과 대구대학교 특수교육과를 졸업한 정교사가 라파엘의 집에 부임했을 때도 신영식씨는 다른 농맹자와 어울리지않고 방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타인과의 접촉을 극히 꺼리는 상태였다.
정지훈 교사는 신씨가 나중에 실명을 했기때문에 직접 경험을 통해 사물과 낱말의 연결이 희미하게나마 가능하고 글자 자체에 대한 기초인식이 돼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중복장애자교육」이라는 불모의 땅에 뛰어들었다.
신씨의 폐쇄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 꾸준히 동네주변을 함께 산책하는 등 일거수일투족을 같이하면 인간적인 신뢰감을 키우는데 힘을 쏟았다.
1주일이 지나자 신영식씨는 웃음을 보이기 시작했고 곧 점자교육을 시작했다. 첫단계는 점자촉각기를 이용해 점자의 대략적인 개념을 이해시켰고 그후 점자촉각기와 점자타자기를 연결시켜 초성ㆍ중성ㆍ종성 점자쓰기를 하고 음절 하나하나를 쓰게 했다.
이것이 어느 정도 되자 읽기연습을 시키면서 둔한 촉각을 위해 정교사 자신이 직접 고안한 교구(아크릴판에 한글을 샌드 페이퍼로 오려붙이고 그 옆에 모이스 테이프로 점자를 찍어 같이 붙여 놓은 것)를 이용해 한글과 점자를 연결, 교육하면서 3백여개의 글자판을 만들어 읽기 연습을 시켰다.
손바닥에 글을 써서 의사를 전달했고 간단한 수화ㆍ친한 사람끼리 쉽게 알 수 있는 바디랭귀지까지 동원했다.
상상외의 성과가 나타났다.
정교사는 앞으로 어휘력을 늘리고 문장력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교육을 계속해 가능하다면 신영식씨가 일반맹학교에 진학하기를 바라고 있다.
『시각장애 하나로도 힘겨워하는 자신을 돌이켜 볼 때 그에게 주어진 짐의 무게는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고 밝힌 정교사는 『신영식씨가 전농이 아니고 70~90데시빌정도의 완전 농이기 때문에 우선은 30만원 가량이 드는 보청기를 구입해 그 교육부터 시키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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