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떨한 가운데 첫날을 보내고 개학날을 맞았다. 저마다 집에 내려갔던 선배 신학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신학교가 웅성거렸다.
나와 함께 입학한 신입생은 총 34명이었다. 이렇게 학생이 많이 들어 오기는 신학교가 세워진 이후 처음맞는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학생들 중에는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새파란 신랑」이 몇명 눈에 띄였다. 탕건에 갓을쓰고 두루마기를 척하니 입고 짚신을 신은 모습이 영락없이 갓 혼인한 새신랑꼴이었다. 나는 『신부는 혼인을하면 안된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새신랑이 신학교에 들어올수 있는지』하고 궁금증을 품으면서 혹시 뒤를 따라온 집안 동생들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유심히 보는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신랑들은 성당까지따라와 미사를 봉헌하는데 그 태도가 여간 경건해뵈지 않았다. 아차! 나는 그제서야 새신랑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방학동안 집에 다녀온 상급생들인 것을 알았다. 나이가 나인지라 부모들이 예를 갖춘다고 갓이며 두루마기를 마련해 입혀보낸 것이었다. 그 이후에도 개학날이되면 갓쓰고 두루마기입은 「새신랑아닌 새신랑들」을 학교에서 종종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지금 생각해도 진기한 구경거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와 함께 입학한 동기생 34명은 출신지가 역시나 다양했다. 이남출신들도 꽤많았고 이북출신 중에서는 나와같은 황해도가 3명, 평안남북도가 2명, 멀리는 북간도에서 온 사람도 1명있었다.
나이는 전부 고만고만한 20세 이하의 같은 또래였다. 황해도 재령에서 왔다는한 친구는 하룻밤만 자고 신학교를 떠나버렸다. 밤새도록 집생각이 나서 울었다는 그 친구는 『왜 울었냐』는 진교장 신부님 물음에 『신학교에 있을 생각이 없다. 아버지를 따라 도로 내려가겠다』며 그길로 고향으로 가버렸다.
이렇게 첫날부터 동기생이 하나 빠져버리고 그후에도 엄격한 신학교규율 등 여러 이유때문에 동기생들 중 나를 포함해 전부 12명만이 1923년~1926년 사이에 사제서품을 받을 수 있었다. 이때 신학교를 등진 동무중에는 끓어오르는 애국심을 참지못해 만주로 가버린 사람도 있었다. 1914년 대구신학교가 생기자 그곳 출신들은 그곳으로 내려갔기때문에 서품자는 대구 6명 서울 6명 총 12명이었다.
예수성심신학교 동기사제로는 이여구 신부(50년 행불) 유재옥 신부(50년 피살) 서기창 신부(50년 피살) 이선용 신부(53년 선종) 정원진 신부(76년 선종)가있고 대구 성유스띠노신학교 동기는 이경만 신부(23년 선종) 김영제 신부(66년 선종) 정수길 신부(78년 선종) 이종필 신부(54년 선종) 서정도 신부(64년 선종) 이필경 신부(36년 선종)를 꼽을수 있다.
이제는 모두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버리고 나만 남았다. 지금도 대구신학교로 떠나던 동기들과 이별했던 용산역의 전경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다시 신학교시절로 되돌아가자. 앞에서도 잠깐 말했듯이 신학교 규율은 10명이 입학하면 1명이 졸업할까 말까할 정도로 엄격한 편이었다. 규율에 따르면 집에서 가지고 온 돈이나 방학동안 쓰고 남은 돈은 모두 신학교에 가져다 바치도록 돼있었다.
그밖에도 평소 지켜야할 생활규칙이 여럿 있었다. ▲실내에서는 절대 침묵이며 부득이하게 말을 하게되면 잔잔한 소리로 해야한다. ▲한국말대신 꼭 라띤어를 써야한다▲외출은 절대금지한다. ▲신학교에 관한 사항은 밖에 나가서 발설하면 안된다. ▲여자는 절대 들어올 수 없다. (이규정은 얼마나 엄격했던지 어머니들이 보내는 편지도 금지됐었다)▲교과서 이외에 일반 세속서적은 물론, 신문·잡지도 볼 수 없다(그러나「경향잡지」는 유일하게 허락됐다)등등…
누구도 이 규칙을 어길수 없었다. 한번 어길때마다 뺨을 맞는 것은 물론 「맨밥먹는 벌」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교장신부는 학생들보다 한 턱이 높은 곳에서 식사를했는데 규칙을 어긴 학생은 바로 그 앞에 앉아서 반찬없이 밥을 먹는 것이었다. 나도 이 벌을 한번 받은 적이 있지만 세번 계속되면 그 즉시 신학교에서 퇴학을 당해야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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