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본질은 하느님 부정
1, 비록 신앙개조들은 죄에 대해 아주 적게 말하고 있지만 「죄」라는 용어와 개념은 성서속에 더 자주 나옵니다. 이것은 성서가 하느님의 책이고 하느님에 관한 책이면서 또한 인간에 관한 위대한 책임을 말해줍니다. 성서는 경험되는 그대로 인간실존 상황속에 있는 인간을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죄는 인간과 그의 역사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계명주의와 세속주의 영향하에서 일어났던 바와 같이 그것을 간과하려하거나 이 어두운 실재에 다른 이름이나 다른 해석을 붙이려 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일것입니다. 죄가 하나의 실재로 인정된다면 우리는 동시에 하느님과 인간간의 깊은 유대를 느끼게됩니다. 왜냐하면 비록 죄악이 분명 계속해서 인간의 삶과 역사속에 남아있지만 죄악은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 밖에서는 그 참된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는 그 본질에 있어서 하느님을 부정하고 하느님을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확인되지 않을때 더 한층 어둡고 치명적인 실재로서 인간을 짓누릅니다. 이러한 선택의 주체와 행위자는 물론 인간입니다. 인간은 분명히 하느님께 연관시키지 않으면서라도 자기 자신의 양심의 명령을 거부할수 있지만 인간의 하느님과의 관계를 배경에 두고 볼 때 비로소 그 완전한 부정적 의미를 얻게됩니다.
죄와 창조의 신비
2, 이러한 이유때문에 성서에서 최초의 죄는 창조의 신비라는 맥락안에 묘사돼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인간 역사 시초에 범한 죄는 창조를 배경으로, 즉 존재라는 하느님의 놀라운 선물을 배경으로 나타납니다. 볼수있는 세계라는 상황안에서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과 모습』으로서의 자기의 존재, 지성과 의지를 갖춘 이성적 존재로서의 자기의 존재를 선물로서 받습니다. 하느님의 창조선물이라는 맥락내에서 『최초의』죄-이러한 능력들을 잘못 사용하여 이루어진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의 본질을 가장 잘 볼 수 있습니다.
분명 우리는 여기서 과학의 이론으로 묘사돼있는 역사의 시초에 대해 말하고있는 것이 아니라 성서의 여러장속에 나타나있는대로의 그 『시작』에 대해 말하고있는 것입니다. 성서는 이『시작』속에서 인류가 죄로써 체험하고 확인하는 윤리적악의 기원을 드러냅니다.
피조물은 원래 선하게 창조돼
3,창세기는 창조사업의 첫번째 서술(창세기1장1~28,이것은 창세기2장4~15의 이야기보다 연대적으로 후기의 것이다)에서 창조된 모든 것의 원초적 「선성(좋음)」과 특히 하느님에 의해서 『남자와 여자』로 창조된 인간의 「선성(좋음)」(창세기1,27)을 강조합니다.
창세기는 창조의 묘사에서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창세기1:12,18ㆍ21ㆍ25)고 여러번 말하고 마지막으로 사람을 창조한 후에는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창세기1,31)고 말합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존재, 즉 이성적이고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된 존재의 경우이기 때문에 그 구절은 창조주의 계획에 맞는 그러한 존재에 속하는 「선성」을 암시합니다.
인간의 원초적 의로움
4,이것은 인간이 하느님의 손에서 나와 하느님과 완전한 친교속에 살았던 창세기(창세기2,8~25참조)의 인간묘사에서 보는바 인간의 원초적 결백, 인간의 원초적 의로움(justjtja orginalis)에 대해 교회가 가르치는 신앙진리의 기초입니다. 전도서 역시 『하느님은 사람을 의롭게 만드셨다』(전도서 7,29)고 말합니다. 뜨리덴띠노 공의회가 첫 아담이 그가 받는 거룩함과 의로움을 상실했다고 가르칠때 이것은 죄를 짓기전에 인간을 하느님 앞에 『의롭게』 만들어주는 온갖 초성 은혜들과 더불어 인간이 성화은총을 소유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시초에 인간은 하느님과의 친교속에 있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요약할수 있습니다.
[교황님이 가르치는 교리-나자렛예수] <110> 죄는 하느님 선물의 오용 (상)
발행일1988-01-10 [제1587호,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