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노사제회고」란을 꾸며오신 장병화 주교님께서 병세악화로 노사제회고를 계속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본보는 장 주교님의 유학시절과 귀국 후 은퇴까지의 사목활동 발자취를 간추려 게재합니다. 애독자 여러분의 많은 이해와 장 주교님의 쾌유를 위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일본에서 배를 타고 32일만에 프랑스 마르세이유에 도착한 장 주교는 파리에서 잠시 머물다 8월초에 벨기에의 루뱅으로 갔다. 그때부터 약1달간은 언어와 그 고장 관습을 익히느라 무척 바빴다.
루뱅에 도착한지 1달 후 9월, 대학에 등록했다. 루뱅대학을 전통적으로 10월 첫 화요일에 개학했는데 현재 경북산업대학장인 이태재 박사만 정식으로 등록했고 나머지 학생들은 청강생으로 등록했다. 정식으로 등록하면 4년 전과정을 마쳐야 했기 때문이다. 장 주교는 루뱅대 사회학과 청강생으로 등록했는데 당시 국내에서는 사회학이 한창 붐이 일어났던 때였고 서울대학교에만 사회학과가 있었을 뿐이었다.
유학생후원회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장 주교는「루이디까날」이라는 별장 같은 큰집에 숙소를, 이효상 선생과 김달호 교수는「투이디빠리」라는 곳에 숙소를 정했는데 주말엔「루이디빠리」에 모두 모여 식사를 하는가 하면 인근 성당에서 한국어로 미사를 봉헌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업관계로 자주 모이지는 못했다.
더욱이 한솔 이효상 선생은 개학 전 실시한 신체검사에서 불합격판정을 받아 루뱅대학에 입학하지 못하고 독일 국경 근처에 있는「싸나또리움」에서 1년간 독학하다 귀국했고 남규일 교수는 식성이 맞지않아 건강상 이유로 1년후에 귀국, 김달호 교수는 독일로 이규영 교수는 빠리로 최정식 박사는 스위스로 각각 옮겨갔고 그후 장 주교는 2년간 사회학공부를 마친 후 귀국해 나중에는 이태재 박사 혼자 루뱅대학에서 계속 유학했다.
벨기에서 귀국한 장 주교는 곧바로 마산교구 진해중앙본당 주임으로 부임했으며 57년 4월부터 마산교구장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부산교구 주교좌 중앙본당 제3대 주임신부로 봉직했다.
남달리 성모신심이 강했던 장 주교는 10여년간 부산중앙성당 재임시 13개의 쁘레시디움을 설립했고 57년 11월「바다의 별」꾸리아를 꼬미시움으로 승격, 초대지도신부를 역임했다. 63년 5월 교구 최초로 JOC(가톨릭 노동청년회)를 본당 내에 설립, 노동자사목에도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또 장 주교는 신자들의 능동적인 미사참례를 돕고 본당 및 교구소식을 신자들에게 빨리 전해주고 신자재교육 일환으로 본당주보를 발행, 1면에 강론ㆍ토막상식 2면에 지상교리 3면에 본당ㆍ교구소식, 4면에 독자란ㆍ본당내 단체활동 상황을 게재했는데 이는 부산교구 주보발행의 시초가 된 점에서 큰의미를 가지고 있다.
63년 사제서품 24주년 은경축을 맞은 장 주교는 이때 몬시뇰로 서임됐으며 60~68년까지 부산교구 부주교직을 겸직하기도 했다.
68년 9월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제2대 마산교구장 주교로 임명된 장 주교는 그해 10월 로마에서 거행된「병인순교자 24위 시복식」에 참석한 후 주교로 성성됐다.
로마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주교로 성성된 장 주교는 68년 10월 30일 마산 성지여자중ㆍ고등학교 강당에서 거행된 착좌식을 통해 제2대 마산교구장으로 착좌, 「사랑으로 봉사하자」를 사목표어로 내걸고『오직 주님의 뜻에 따라 성모마리아의 도움을 청하며 나의 모든 것을 바쳐 일해 볼 각오』라며「종중의 종」으로서 모든이에게 봉사할 것을 다짐했다.
제2대 마산교구장에 착좌한 장 주교는「사랑으로 서로 봉사할 것」을 강조하면서 포교활동에 지대한 노력을 기울여 신자 모두가 전교사가 되기를 거듭 강조해 왔다. 또한 장 주교는 재임 중 오스트리아 그랏쯔교구와 자매결연을 맺는 등 초창기 마산교구의 초석을 다지는데 큰 공헌을 했다.
또 장주교의 교구장 재임 20여년동안 본당수를 두배로, 신자수도 3배가 넘는 급성장을 보여 마산교구는 물론 한국교회발전에 큰 이바지를 해왔다.
또한 장 주교는 77년 해성중고ㆍ성지여중고로 구성된 성지학원을 설립, 교회가 지역사회의 육성사업에 이바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89년 2월 건강상의 이유로 교구장직에서 은퇴한 장 주교는 현재 마산 성지여중ㆍ고등학교내에 있는 교구사택에서 요양하면서 남은 생애를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하루하루를「주님의 종」답게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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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제의 회고] 제2대 마산교구장 장병화 주교 9.
63년 몬시뇰 서임, 68년 주교서품
89년은퇴… 남달리 성모신심 강해
발행일1990-07-29 [제1715호, 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