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선재
5, 이 전리에 대한 가장 포괄적인 종합은 제4복음서 서언에 담겨 있습니다.
그 본문에는 사람의 아들의 신적 선재(先在)에 대한 진리가 더 명확하게 서술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더 결정적입니다.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말씀은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생겨난 모든 것이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속에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요한1,1~5).
이 말에서 복음기자는 예수님이『나는 아버지께로부터 나와서 세상에 왔다』고(요한16, 28) 말하거나 그분이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누렸던 그 영광을 누리게 해 달라고 당신 아버지께 기도할 때(요한17,5 참조) 당신 자신에 대해 주장했던 바를 확인해 줍니다. 동시에 아버지안에서의 아들의 선재와 하느님의 삼위일체적 신비의 계시사이에는 엄밀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즉 아들은 영원한 말씀『하느님으로부터 나신 하느님』아버지와 본체가 같으신(니체아 공의회 신경이 표현하듯이) 분입니다. 그 공의회의 표현은『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는 요한의 선언을 정확하게 반영시키고 있습나다. 아버지안에서의 그리스도의 선재를 인정하는 것은 신성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영원성는 신성의 실체에 속합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실체에 속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 안에서의 영원한 선채를 이야기할때 언급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말씀」과「지혜」
6, 요한의 서언은「말씀」 에 관한 진리를 계시하면서 말하자면 구약이 이미「지혜」에 관해 말한 것의 결정적 보완이 됩니다. 예를 들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분은 시간이 있기 전에 나를 만드셨다. 그런즉 나는 영원히 살 것이다』(집회서24,9)『나의 창조주께서 내가 살곳을 정해주시며「너는 야곱의 땅에 네집을 정하라」고 말씀하셨다』(집회서24,9)구약에서 언급된 지혜는 피조물인데 동시에 그것을 모든 피조물 위에 높이는 속성들을 갖고 있습니다『지혜는 비록 홀로 있지만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며 스스로는 변하지 않으면서 만물을 새롭게 한다』(지혜서7,27).
요한의 서언에 담긴「말씀」에 대한 진리는 구약에 뚜렷하게 나타나는 지혜에 관한 계시를 어떤 의미로 재확인해주는 반면 동시에 결정적으로 그것을 능가합니다. 즉「말씀」은 그저『하느님과 함께 계시는 것이 아니라『하느님이십니다』. 이세상에 들어 오심으로써 그「말씀」은『자기 나라에 오셨습니다』 『세상이 그분을 통해 생겨난』때문입니다 (요한1,10~11참조). 그분은『자기 백성들에게』오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비추는 빛이기』때문입니다.(요한1,9참조). 예수그리스도안에서의 하느님의 자아계시는 영원한 아들「말씀」에 의해서 세상에『들어오는』이것으로 이루어집니다.
아버지로부터 세상에
7,「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외아들이 아버 지에게서 받은 영광이었다. 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요한1,14)
다시 한번 거듭 말합니다、(요한1,14).다시 한번 거듭 말합니다、요한의 서언은『나는 아버지께로부터 나와서 세상에 왔다』(요한16,28)고 하시는 예수님 말씀의 영원한 메아리입니다. 그리고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당신이 누리던 그 영광을 드러내 주십 사고 영원하신 당신 아버지께 기도드린 그 정강(요한17,5 참조)의 영원한 메아리이기도 합니다.
복음기자는 지혜에 관한 구약의 계시를 관상하면서 동시에 빠스카사건 전체를 눈으로 보게 해줍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떠남으로 사람의 아들이며 참 하느님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가 그사건들의 목격 증인들에게 투명해지게 됩니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8, 그리스도의 신적 선재(先在)와의 엄밀한 관계에서 우리는 엠만누엘에 대한 진리의 확인도 발견합니다. 엠마누엘이라는 이 말-문자 그대로『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를 뜻하는-은 세상속에서의 하느님의 특정적이고 인격적인 현존을 표현해줍니다. 『나는(내가 있다)』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은『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7,14 참조)고 이사야가 미리 알려준 바로 그러한 현존을 드러냅니다.
이번 호를 끝으로「나자 렛 예수」연재를 마칩니다. 이제까지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교황님이 가르치는 교리 - 나자렛 예수] 187. 아버지의 영원한 말씀 예수 (하)
발행일1990-07-22 [제1714호,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