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신적 전재
1、앞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에 대해 말씀하시면서『나다(나는 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신 말씀에 특별히 주목했습니다. 이 말씀이 나타나는、특히 요한 복음에 나타나는 맥락은 그러한 문구를 사용하심으로써 예수께서는 구약의 하느님이 모세가 부름받은 사명을 그에게 맡기실때 모세에게 당신 자신을 가리킨 그 이름을 언급하셨다는 결론을 내리도록 우리를 격려해줍니다.『너는「나를 보내신 분은 나다-라고 하시는 그분이다」라고 이스라엘에게 일러라』(출애굽3、14).
아브라함에 관한 토론 중 예수께서는 비슷한 맥락으로 자신에 대해『나는 아브라함이 있기전 있었다(있다)』(요한8、58)고 말씀하셨습니다.이 표현은 우리로 하여금「사람의 아들」이 당신의 신적 선재(先在)를 증언하는 것이며 이것이 고립된 말씀이 아니라고 결론짓게 해줍니다.
지상실존과 선재
2、예수께서는 한번 이상 자기의 인격의 신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자신에 대한 이런 논평 중 가장 종합적인 것이 다음 말씀인것 같습니다『나는 아버지께로부터 나와서 세상에 왔다가 이제 세상을 떠나 다시 아버지께 돌아간다』(요한16、28).
이 말씀은 빠스카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 밤 고별담화에서 사도들에게 예수님이하신 것 입니다.그리스도께서 세상에『오시기』전 아들로서 아버지와 함께『계셨다(있었다)』고 이 말씀은 명백히 말하고 있습니다.그것은 결과적으로 하느님안에서의 그분의 선재하심을 암시합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지상실존이 하느님안에서의 선재와 분리될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십니다. 그것이 아니고서는 그분의 위격적 실재는 올바로 이해될수 없습니다.
「내려옴」과「올라감」
3、비슷한 표현들이 많습니다.예수께서 당신이 아버지께로부터 세상으로 오심에 대해 언급하실때 보통 그분의 말씀은 당신의 신적 선재를 지적합니다. 이것은 특히 요한 복음에 분명히 나타납니다.
빌라도앞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요한18、37).
아마 빌라도가 나중에 예수님에게『도대체 너는 어디에서 온 사람이냐?』(요한19、9)하고 물은것은 뜻이 없는 물음이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 앞의 본문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나는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으니 내가 비록 나자신을 증언한다 해도 내 증언은 참되다』(요한8、14).니꼬데모와의 야밤대화에서『당신은 어디서 오셨습니까?』란 질문에 특별한 답을 하십니다『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의 아들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간 적이 없다』(요한3、13).
이 하늘에서 아버지에게서『내려 옴』은 그리스도의「떠남」과 관계되듯이 그분의 신적 선재를 암시합니다.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요한6、62참조).예수께서는 가파르나움 근처에서『성체성사적 담화』와 관련하여 이렇게 물으신것입니다.
「전」에 누리던 그영광
4、메시아로서의 예수의 지상실존、전체가 그『전』으로 부터 유래하며 아버지와『하나』로서 아들을 증명하는 기본「차원」으로서 그것과 결합돼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다락방에서의 대사제적 기도 말씀은 참으로 웅변적입니다『나는 아버지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일을 다하여 세상에서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아버지、이제는 나의 영광을 드러내 주십시오.세상이 있기전에 아버지곁에서 내가 누리던 그 영광을 아버지와 같이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요한17、4~5).
같은 방법으로 공관 복음서들은 세상의 구원을 위해 사람의 아들의「오심」에 대해 여러 기회에 말합니다(예를 들면 루까19、10:마르꼬10、45:마태오20、28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요한의 본문은 그리스도의 선재에 대해 명백하게 말합니다.
[교황님이 가르치는 교리 - 나자렛 예수] 186. 아버지의 영원한 말씀 예수 - 상
발행일1990-07-15 [제1713호,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