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4일 오전 11시 전국적으로 공포가 감돌았지만 명동성당만은 의외로 색다른 감흥에 젖어 있었다.
이 시각 명동성당에서는 영등포교도소 교도관과 재소자 동료, 지도수녀와 양모(養母)의 눈물어린 축복을 받으며 김수환 추기경 앞에서 혼배성사를 받는 한쌍의 신랑신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랑 이석용씨(40ㆍ바오로)와 신부 박한순양(29ㆍ마리아).
이들은 작년 11월 23일 영동포교도소에서 안타까운 옥중 약혼식을 올린 후 만11개월만에 결혼식을 올리게 된 것이다.
이날 결혼식은 축하객치량이 장사진을 이루거나 화환이 즐비할 만큼 성대하지는 않았지만 법무부 교정 심의관이 양부가 되어 조촐하게 신부의 큰절을 받는 폐백장면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신랑 이석용씨는 지난 80년 형수 친정댁 목공소에서 일을 하던 도중 사돈의 싸움을 말리려나 도리어 구타 당하자 홧김에 3살난 아기를 식칼로 살해한 아픈 과거를갖고 있다.
첫 공판에서 무기지역, 2차공판에서 15년의 징역을 구형받은 이씨는 금년 10월 2일 특별사면될 때까지 영등포 교도소에서 죄책감에 시달리며 뼈아픈 회개의 길을 걸어온 1급 모범수였다.
그러나 이씨는 전과자에 대한 사회의 냉대가 얼마나 살벌한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듣기 좋은 혼인 권유가 들어오면 『살인범에게 어느 여자가 시집을 온다 말인가? 40중반에 출감하면 수도원 주방일이나 도울 수 있는지 알아 보겠다』며 일축해 버리곤 했었다.
이런 이씨를 설득한 것은 『죽은 아이는 영원히 살리지 못한다.아이를 다시 살리는 셈 치고 배운것 없지만 마음 착한 여자와 결혼하라』는 양모 정팔기씨(75ㆍ안나)의 충고와 40일간 하루도 쉬지 않고 신부집을 찾아가 애원한 정씨의 정성이다.
14년전 50평짜리 집을 팔아 그 돈으로 9개교도소를 돌며 의복과 음식을 넣어준 정씨는 4년전 이석용씨를 양아들로 입적시켜 남다른 사랑을 보여왔고 금년 8월 23일 이씨와 결혼을 위해 1주일간만 휴가를 신청코자 법무부장관을 찾아 갔다가 용케도 특별사면까지 받아낸 어머니이다.
이날 결혼식이 후 기념 촬영에서도 어머니 정씨는 영적으로 맺은 아들이 차가운 사회 속에서도 좌절하지 말고 꿋꿋이 살아주기를 바라는 듯 아들의 손을 꼬옥 잡아보는이의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결혼식을 마친 이석용씨는 『모든게 감사할 뿐』이라고 말하고 『아직 감옥에 남아있는 재소자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잘 살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이씨는 『전과자는 이력서를 낼수도 없고, 백명중 99명으로 부터 냉대를 받기 때문에 재범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며 『부디 형식적 교도소 방문으로 물품이나 전달하기 보다는 손을 잡고 정을 나누는 사회를 이루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현재 인천 전세방을 얻어 출감자 3명과 함께살고있는 정안나씨도 『나의 세가지 소원은 사회인이 전과자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 연립주택이라도 얻어 집주인의 냉대를 피하는 것, 양자식들을 관면혼배시키기 보다 명동성당에서 혼인미사를 보게 하는 것』이라고 얼른 거들었다.
남들만큼 형편이 좋지않아 신혼여행을 양가 인사로 대신해야 했던 이석용씨 부부는 현재 3백만원 보증에 월14만원짜리 방을 한칸 얻어 신혼살림을 차리고 있으며 교도소에서 익힌 건축목공 2급, 가구조형 3급기술로 아침 8시 30분부터 밤9시까지 일을 하며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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