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독신으로 고아와 불우어린이만을 위해 살아온 이경준 (엘리사벳ㆍ77) 여사.
부농의 막내딸로 태어나 부모 유산만으로도 편안한 일생을 보장받았음에도 지금껏 자신을 위해서는 옷가지 하나 사입지 않으며 애오라지 타인을 위해 살아온 실천하는 신앙인 이경준 여사의 현재 직함은 사회복지법인 마산 소화어린이집 원장.
6ㆍ25때 거리에 내팽개쳐진 전쟁고아들을 위해 본격적인 육영사업을 시작, 25년 동안 청춘을 불사르며 고아 사업에 헌신해온 이 여사는 71년부터 병행해 온 탁아사업을 지금까지 지속하면서 조만간 노약자를 위한 양로원 설립을 서두르고 있는 억척 같은 할머니 사회사업가이다.
6ㆍ25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53년 3월 1일 사재를 전부 털어 재단법인 마산소화보육원을 설립한 이 원장은 여자 혼자 몸으로 온갖 역경을 감수하며 묘목재배 및 양돈사업으로 1백여명의 오갈 데 없는 전쟁고아들을 25년여동안 양육하며 공부ㆍ취업ㆍ결혼시켜 어엿한 사회인으로 배출했다.
전국 각지 출신으로 유아에서부터 초ㆍ중ㆍ고교생까지 수십여명의 고만고만한 고아들이 함께 사는 동안 서로 티격태격 싸우는 일도 잦았으며 밤마다 이불을 걷어차는 아이들의 잠자리 돌보기에도 힘에 겨운 삶이었다.
이런 자잘한 어려움보다도 이 원장을 괴롭힌 것은 보육원 대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재정압박이 가장 큰 고통 중의 하나였지만『하느님 축복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며 사회의 조그만 온정에도 항상 감사기도를 봉헌했다.
이 같은 어려움 속에 성장한 자녀들이『꿈속에 나타나 어머님의 뵙고싶어 찾아왔다』며 불쑥 나타나거나 자신도 어려움 속에 살면서도 정성을 보내올 때는 커다란 기쁨을 느낀다고. 71년 이 원장의 회갑 때 한 자녀가 보내온 장문의 감사편지에는『저희들 학비조달을 위해 기르던 돼지새끼를 당신 방으로 데려 들어가 키우다 눈병을 얻어 입원하실 때는 정말 안타까왔다』며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보육원 설립초기 때 아이들이「어머니」라 부르고 싶다고 요구해왔을때는 1주일동안 생각끝에 허용했다. 그것은 깔끔한 성격의 이 원장이 독신으로 살아온 자신이 어머니 칭호를 듣기가 거북하고 어색했지만 어머니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에 젖어있는 자녀들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계속돼 온 보육원사업은 78년 난립상을 보이던 고아원을 정리하기 위한 마산시의 권유를 가장 먼저 받아들여 그만두게됐다. 이 여사는 이후 71년부터 보육원사업과 병행 실시해온 미아보호소를 겸한 탁아사업에만 전념, 현재까지 맞벌이부부 자녀 등 영세민자녀 80여명을 돌보고 있다.
1912년 경남 밀양군 단장면에서 부농의 9남매중 막내딸로 태어난 이 원장은1930년4월, 당시 4년제인 대구 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5월부터 7년여동안 삼랑진본당에서 성가반주와 교리교사 등으로 본당신부를 도우면서 지방부녀자들의 문맹퇴치 및 계몽활동에도 힘쓰는 한편 월사금이 없어 학교에 못나가는 아이들이나 부모없이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다 기르기도 했다.
1937년 물좋은 휴양지 마산에서 은퇴해 살던 삼랑진본당 출신 목 신부의 권유로 마산으로 이주해 온 이 원장은 이곳에서도 부인회를 조직, 한글깨치기 및 자주독립사상을 고취시키는 것과 함께 주위의 불우어린이 돌보기에 헌신, 봉사했다.
주민등록상 마산시 완월동 206번지로 돼 있는 이 원장의 본적은 삼랑진서 이사해 온 첫 주소지로 이 당시 목 신부가 교회부지로 물색해놓은 땅이엿다. 이곳에 성지여고가 들어설 때 이여사는 마산시 완월동 214번지로 옮겨 현재까지 현주소로 돼 있다.
지난해 여름 큰병치레를 했던 이후로 새벽미사에도 못나가고 부쩍 늙어버렸다는 이 원장의 요즘 일과는 새벽 5시30분 기상 후 아침기도와 묵주기도로 시작, 손님맞기와 양로원 설립 준비에 바쁘다.
고아사업과 영세민자녀 탁아사업으로 평생을 살아 온 이 원장은 마지막 사업으로 늙고 병든 노약자들을 위한 양로원사업을 계획, 추진 중에 있다.
『벌써 주위에서 5~6명의 노인들이 입주신청을 해놓은 상태』라고 밝히는 이 원장은『일반 노인과 함께 은퇴신부도 모시고 싶다』고 포부를 밝힌다.
이 원장은 그동안 수많은 상을 수상했는데 55년 3월 경상남도지사 감사장, 62년 12월 마산시장 표창장, 66년 5월 마산시장 표창장, 67년 5월 향토문화공로상(문화공보부장관), 70년 11월 보건 사회부장관 표창장을 받았다.
<崔弘國기자>